인생은 게임처럼 살 수 없다

입력
2023.07.08 18:00
[한창수 교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대입 준비를 시작한 아들이 인터넷 게임에 빠져 학원도 결석하고 뻔한 거짓말까지 하면서 밤새 게임을 하는 것 같은데 어찌하면 좋겠냐고 묻는 어머니가 있다.

#치매 예방이나 집중력 강화 훈련법이 다양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을 알려준다고 해도 집중해 반복하지 않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그래서 요즘엔 컴퓨터 게임 형태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게임화(Gamification)라고 하는 방법은 질병 예방이나 안전 교육을 하면서 점수를 내고 레벨업 하는 등으로 디자인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일이라는 게 잘 된다 싶으면 재미를 느끼고, 그러면 더 자주 반복하게 되니까 더 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학생이나 직장인이 공부나 일할 때는 집중하지 못하고 무기력증을 호소하는데, 게임을 할 때는 장시간 초집중 상태를 유지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는 게임에서는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는 ‘퀘스트’라는 임무를 만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성취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갑옷도 생기고 무기도 업그레이드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그래픽도 화려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축하를 받는 것이다.

그 학생이 본업으로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은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것인데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하루 만에 티가 나지 않는다. 연말이나 몇 년 후에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더구나 잘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말이다. 이럴 때 몇 십분 만에 성공을 경험할 수 있는 게임이 눈앞에 있으면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운동과 뇌 건강 훈련을 가이드하고 자극해 주는 다양한 디지털 앱도 단계별로 구성해 게임을 하듯이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인생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해야 할 일을 작은 단계로 쪼개어 작은 덩어리로 나누어 놓고, 벽돌 깨기 단계 올라가듯이 하나씩 해치우고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사실 10년 이상 준비하고 추진해야 하는 인생 목표라고 해도 1년마다 중간 목표와 1주일, 1일 단위의 일로 구분할 수 있기에 대단히 효율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는 단점도 있다. 이들 중에는 경쟁과 성취, 승부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고, 심하면 자기애적 성향을 이기지 못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또한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지속하기 힘들기에 장기 목표 성취를 위한 끈기를 유지하기 힘들다. 순간마다 이겨야 하기에 잘되지 않으면 좀더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만두고 다른 걸 하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또한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와 경쟁하고 점수화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필자도 게임처럼 된 형태의 업무는 가급적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생을 게임화하는 것은 세부적 단기 목표 설정과 달성에 도움될 수 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장기적 목표가 무엇인지 자주 확인하고 지금 하는 일이 큰 계획 가운데 어디쯤 해당하는지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삶에는 수많은 상황과 운이 개입하게 마련이다. 삶을 단기간 순발력에 의존한 게임처럼 대하다 보면 좌절하기 쉽다. 삶과 세월은 그냥 그대로 흘러간다. 순간마다 그걸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건 우리의 몫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