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산불 때 정부가 쓴 재난지원금... 법원 "한전도 60억 부담해야"

입력
2023.07.05 16:57
법원 "한전, 산불원인 제공자 해당 
중복비용 등 제외 20% 상환 책임”

2019년 4월 축구장 1,700개 면적의 산림(1,260㏊)를 태운 강원 고성군·속초시 산불에서, 전신주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는 한국전력이 정부 재난지원금의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춘천지법 민사 2부(부장 윤경아)는 5일 정부와 관련 지방자치단체가 한전을 상대로 낸 비용상환청구소송에서 "한전의 책임을 20%로 제한한다"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화재 이재민 등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정부가 2021년 "한전에 구상금을 청구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구상권은 다른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준 사람이 원래 채무자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사건에선 정부가 미리 재난지원금을 신속하게 지급한 다음, 화재에 책임이 있다고 보이는 한전 측에 나중에 재난지원금을 부담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정부의 요구가 나오자 한전은 "채무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고, 정부와 지자체는 "한전이 400억 원을 내야 한다"는 취지의 맞소송을 제기했다. 이 법정공방이 2년간 이어졌다.

이번에 재판부는 "2019년 산불에서는 전신주의 하자와 이재민들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며 "국가 또는 지자체가 지급한 재난지원금에서도 비용상환 청구권이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한전이 산불 발생 이후 자체적으로 손해액을 계산해 피해보상금(약 562억 원)을 지급한 점을 감안해 (구상권에 따른) 비용상환 책임을 20%로 제한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부 등이 청구한 금액 중 한전이 부담해야 액수를 60억4,497만 원으로 결정했다.

2019년 4월 4일 발생한 고성·속초 산불은 고성군 원암리 전신주 개폐기 내 전선에서 불꽃이 튀면서 초대형 재난으로 이어졌다.

춘천=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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