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 인하"... 정부 고강도 압박에도 ‘물가’ 불안, 이유 셋!

입력
2023.07.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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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률 21개월 만에 2%대  
①유가 ②이상기후 ③근원물가

가공식품 가격 인하 요구, 공공요금 최대한 동결 등 정부의 고강도 압박에 물가 상승률이 안정권에 안착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나섰던 정부도 이젠 경제정책의 무게 추를 경기 진작으로 옮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지난해 물가 급등을 이끈 국제에너지 가격이 불안한 데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곡물가격은 이미 오르고 있어 안심하긴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물가 중심 경제정책에 변화를 예고했다. 경제 활력 제고를 최우선 목표로 내걸며 경기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2.7%)이 21개월 만에 2%대에 진입하고,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3.5→3.3%)하는 등 물가가 비교적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판단에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돌발 요인이 없다면 하반기 물가 상승률은 2% 중후반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가를 끌어올렸던 대외 요인이 또다시 악재로 작용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물가 불안은 여전한 상황이다.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①국제유가만 해도 최근의 안정세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하루 100만 배럴의 원유 생산량 감축 조치를 다음 달까지 연장하기로 했고 러시아도 원유 생산량을 50만 배럴 줄이기로 결정한 탓이다.

일각에선 세계 경기 둔화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원유 공급량을 감축해도 충격이 크지 않을 거란 분석을 내놓지만, 이 경우에도 국제유가는 지금보다 높을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지난달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국제 원유 중 하나인 브렌트유의 배럴당 가격을 86달러로 내다봤다. 수요 하락에 기존(배럴당 95달러)보다 전망치를 9.5% 낮췄으나 여전히 시장 가격보다 높다. 현재 브렌트유는 배럴당 70달러 초중반대에서 거래된다.

전 세계 곳곳에 ②이상고온과 가뭄을 불러오고 있는 엘니뇨도 골칫거리다. 엘니뇨는 적도 지역 태평양 동쪽의 해수면 온도가 0.5도 이상 올라 수개월 지속되는 현상으로, 미국과 브라질 등 주요 식량 원자재 생산국에 직접 타격을 준다. 실제 미국 곡창지대 가뭄으로 작황이 부진하자 연초부터 5월까지 하락세를 탔던 밀 선물 가격이 6월 들어 반등했다. 설탕 가격(5월 기준)은 연초보다 약 35% 뛰었다.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 브라질 등 주요 원당 생산국의 생산량이 엘니뇨로 내년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자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대내적으론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나타내는 ③근원물가의 하락세가 크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지난달 근원물가는 1년 전보다 4.1% 올라 지난해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돈다. 특히 정부의 물가 안정 판단 근거가 된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물가가 크게 올랐던 데 따른 기저효과 영향이 큰 만큼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 요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계속적인 물가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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