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민주당의 새로운 길
민주당에 대해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혹스러웠던 적이 최근 두어 번 있었다. 한 번은 한국에서 오래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간 분과 정치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중에 그분이 "국민들은 보수정당이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에 기대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순간 이게 일본 이야기인지, 한국 이야기인지 서로 알 수가 없었다. 또 한 번은 지인 몇 사람과 내년 총선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한 분이 윤석열 정부가 정치를 너무 독단적으로 하고 야당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분이 말했다. "그럼 지금이랑 똑같이 되겠네? 자네는 지금 한국정치가 좋아? 나는 싫은데."
정치학자들은 어떨까? 언론에서는 어느 정당이 이길지를 묻지만, 여기에 답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대신 투표율에 관심이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총선 투표율은 지난 13대(1988년) 총선의 75.8%였고, 가장 낮은 투표율은 18대(2008년)의 46.1%였다. 정치 혐오를 넘어 지금 같은 정치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내년 총선 투표율이 과연 18대의 기록을 깰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참고로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은 81석을 얻었다. 서울에서는 48석 중 7곳에서만 승리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여전히 낙관론이 우세하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대해 국민들이 실망했기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반사이익이 왜 지금은 민주당 지지율로 연결되지 않을까? 그리고 왜 지금은 연결되지 않는 그 지지율이 내년 선거 때는 갑자기 나타나리라고 기대하는 것일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자. 반사이익은 언제 나타나는가? 민주당이 유능함과 도덕성 중에서 적어도 하나는 놓치지 않았을 때 나타난다. 바꿔 말하면, 보수정당이 그 둘을 동시에 잃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기반이 기울어진 운동장임에도 6번의 대선에서 3번은 이길 수 있었다. 지난 6번의 총선에서도 과반을 2번이나 차지하고 원내 1당도 3번이나 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전략의 부재'와 '가치의 상실'이라는 두 가지 덫에 모두 빠진 듯하다. 3가지 착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시대착오다. 지금 민주당은 박정희나 전두환과 싸우는 게 아니다. 친일파와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쿠데타, 매국노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개별 이슈에서 국민들이 윤 정부의 정책에 반감을 가졌다가도 민주당의 오만한 태도에 금세 마음을 접어버린다. 그런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은 아마 60대 이상일 텐데, 민주당은 대체 누구를 향해 무슨 메시지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둘째, 자기착오다. 민주당은 스스로 보수정당보다 더 도덕적이거나, 유능하거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수두룩한데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모순적인 것은, 도덕성에서 더 낫다는 믿음을 가지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도덕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변명이든 뭐든 좋은데, 그래도 앞뒤는 맞아야 할 것 아닌가.
셋째, 유권자 대중에 대한 착오다. 한번 민주당 지지층이면 미워도 저쪽은 못 찍는다고 생각한다. 맞다. 저쪽은 못 찍는다. 그런데 민주당의 개혁방향을 제시했던 '새로고침위' 보고서에 따르면, 지지자 중에서 실제로 투표장까지 나올지 모르겠는 사람이 반이다. 기시감이 든다.
새로운 민주당의 길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늘 그렇듯 지금 자기가 선 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 속에서, 과거의 성공담과 경험에만 비추어 자기 확신을 반복하는 주체에게 변화하는 역사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같은 강물에 손을 담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당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삶에서 많은 일들이 그렇듯, 결단이 어려운 것이지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익숙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어려워도 옳은 길을 가려고 한다. 선택은 민주당이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