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살해 상당수가 미혼모인데… 출산 지원은 없다시피

입력
2023.07.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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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임신~출산 미혼모 개별 지원 없어
유럽, 미국 등 의료비 지급 비롯해 다양 지원


"열 달 동안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어요. 그땐 모두 다 저를 버렸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올해 3월 홀몸으로 아이를 낳은 김모(21)씨는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세상을 그를 ‘미혼모’라고도 부른다.

미혼모의 아이라고 소홀히 관리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엄마는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도 받아야 하고, 철분제도 먹어야 하고, 임신성 당뇨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입덧이 심하면 병원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스물한 살 청년이 그 과정을 모두 감당하긴 어려웠다.

김씨처럼 “이 생명 버리지 않겠다” “한번 열심히 키워보겠다”며 대견한 결심을 한 미혼모들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임신·출산 관련 비용은 100만 원. 그것도 바우처(이용권) 형태로 지급된다. 통상의 출산 준비 과정을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다. 김씨 역시 돈을 아끼려고 입덧 약도 먹지 않고 버텼단다. 적금도 깨면서 돈을 마련했지만 꼭 필요한 검사와 병원비에만 수백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미혼모 지원책 사실상 '전무'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영아’를 예방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출생통보제(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출생 통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영유아 살해·유기 범죄 비극이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영유아 범죄 가해자의 상당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미혼모라는 점에서, 이들을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에서 임신 기간의 금전 부담을 줄여주는 미혼모 지원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정부는 현재 진료비 지원 명목으로 임신 1회당 100만 원을 주는 바우처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미혼모를 위한 별도 정책은 아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임신부터 출산 전까지 일반적으로 병원비만 평균 300만 원이 든다”며 “말로는 미혼모 보호를 외치면서 정작 지원은 부실하다”고 꼬집었다.

주거 지원도 열악하긴 마찬가지. 국내엔 임신 중 지낼 수 있는 기본생활지원형 23개소, 출산 이후 지내는 공동생활지원형 40개소 등 63개소의 미혼모 거주 시설이 있다. 하지만 입소 정원이 800명 안팎에 불과해 매년 6,000~7,000명 가까이 되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 입소를 위해선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3년 이상 머물기 위한 조건도 까다롭다.

미혼모의 이런 열악한 사정이 바로 극단적 범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김성희 경찰대 교수가 8년간(2013~2020년) 영아 살해 1심 판결문 46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 46명 중 45명(97.8%)이 미혼모였다. 경제적 어려움이 범죄의 직접 동기가 된 경우도 34건(73.9%)이나 됐다. 1,247명의 미혼모를 조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신 과정에서 ‘금전적 어려움’이 제일 힘들었다고 답한 미혼모가 41%(521 명)에 달했다.

"엄마도 아이도 국가가 보호해야"

선진국은 어떨까. 유럽과 미국 등은 “엄마도 아이도 국가가 보호한다”는 신조 아래 일찌감치 임부와 영유아 지원책을 활발하게 실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임신 6개월부터 정기검진·출산 등에 필요한 모든 의료비를 국영 의료보험으로 부담한다. 2006년부터는 혼외 출산 구별 규정을 삭제해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했다. 독일 역시 의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데 더해 1,300여 곳의 임신갈등지원센터를 운영하며 미혼모를 위한 ‘원스톱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한국도 미혼모 등 한부모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해법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출생통보제 보완책으로 보호출산제(신원 노출 없이 아이를 낳은 뒤 지자체에 인도) 도입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산 이후도 중요하지만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임부를 챙기는 제도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혼모는 홀로 생계와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취약 계층”이라며 “이들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기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