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자, 이른바 ‘개미’들의 채권 사들이기 열풍이 뜨겁습니다. 장외시장 기준 순매수 금액이 올 들어 상반기에만 19조2,371억 원까지 부풀며 벌써 지난해 전체 규모(20조6,113억 원)에 육박했다(금융투자협회)고 하네요. 특히 4월 투자액(4조2,479억 원)은 사상 최대입니다. 월별 개인 채권 순매수액이 4조 원을 넘은 것은 2006년 통계 작성 시작 이래 처음이라고 합니다. 채권 개미들은 어떤 기회를 본 것일까요.
올해 개인 채권 매수세는 저금리 장기채 투자 수요가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 얘기입니다. 상반기 개인 투자자가 가장 선호한 채권 종류는 국채였습니다. 순매수액이 7조418억 원에 이릅니다. 특히 만기가 20, 30년인 초장기물이 선두권이었습니다. 업계 분석을 들어 보면, 가파르게 금리가 오르던 작년에만 해도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하며 고금리를 누리려는 심산이 투자자를 움직이는 데 크게 작용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매매 차익을 노린다면 요즘 같은 채권 투자 적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가 동향이나 시장의 경기 침체 우려를 감안할 때 고공행진이 얼마나 길어지느냐가 문제지 금리가 거의 정점에 도달했고 그래서 사실상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데에 이견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채권 가격이 움직이는 방향은 금리와 반대입니다.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 가격이 올라가는 식입니다. 여기에 채권값은 잔존 만기가 길수록 금리에 민감합니다. 향후 금리가 내려갈 경우 장기채 가격이 단기채보다 더 큰 폭으로 올라가리라 기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채권값이 오르고 매매 차익이 만기 이자 수익률을 능가한다면 굳이 만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을 터입니다.
안개를 완전히 걷어 낼 수는 없습니다. 아직 금리 인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식 입장은 여전합니다. 얼마간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다만 베팅 성패의 관건은 확률입니다. 상당수 투자 전문가가 채권 가격이 올 하반기 바닥을 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선제 매수 움직임이 조만간 본격화하리라는 것인데요. 물가 잡기 성과가 상대적으로 나은 한국이 올 4분기 먼저 금리를 내리고 미 연준도 내년 초 뒤따르리라는 예상이 근거입니다.
채권은 주식의 대안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두 증권은 금리가 내려가면 가격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게 채권이 주식과 구별되는 점이죠. 그래서 채권을 주식 대비 안전 자산으로 여기는 투자자가 많습니다. 증시 조정기에 ‘헤징(위험 회피)’ 목적으로 포트폴리오의 채권 비중을 늘리는 사례가 느는 것은 이런 인식에서입니다.
더욱이 채권 매매 차익에는 세금이 붙지 않습니다. 미 국채 같은 해외 채권은 환차익까지 비과세 대상입니다.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 원이 넘으면 초과분을 다른 소득과 합쳐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게 세법 원칙(종합과세)인 만큼 고액 자산가로서는 채권에 시선이 가지 않을 도리가 없겠죠.
단기채가 매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금리가 언제 떨어질지 아직 애매한 상황에서 고금리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단기 우량등급 회사채의 경우 사실상 원금이 보장되는 만큼 주식보다 안정적일 뿐 아니라 예금과 비교해서도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두 투자처의 단점이 보완되는 셈이죠. 예컨대 우량 공기업 채권이나 디폴트 가능성이 작은 초우량 금융지주회사의 신종자본증권(주식·채권 성격을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 채권) 등이 전문가 사이에서 투자할 만한 자산으로 꼽힙니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있다면 비우량 회사채도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한때 자금이 말라붙었던 회사채 시장의 여건이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게 사실이지만 고금리 영향권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입니다.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에는 변함없이 형편이 녹록지 않습니다.
실제 연 3%대에 머물고 있는 시중은행 금리와 비우량 회사채 이자율 간 격차는 요즘에도 상당합니다. 각각 ‘우량’과 ‘투자 적격’의 기준선인 3년 만기 회사채 신용등급 AA-와 BBB-의 금리가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각각 4.473%, 10.860%에 이릅니다. 상반기 개인의 회사채 순매수액이 작년의 1.8배, 재작년의 4배 수준인 4조8,535억 원까지 불어난 데에는 비우량채의 기여도 적지 않았으리라는 게 업계 진단입니다.
자금시장 변동성 통제는 정부의 정책 과제이기도 합니다. 2017년 종료됐던 ‘하이일드펀드’ 분리과세 혜택이 올 6월 6년 만에 부활한 사건의 뒤에는 이런 배경이 존재합니다. BBB+ 등급 이하 비우량 채권에 45% 이상 집중 투자해 ‘고위험·고수익 채권 펀드’로 불리는 이 금융 상품 대상 세제 지원 제도를 다시 도입하며 정부는 “중·저신용등급 회사채 수요 기반을 만들어 기업과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핵심 메리트는 절세입니다. 개정 조세특례제한법 시행으로 내년 말까지 하이일드펀드에 가입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의 경우 세제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가입일부터 3년간 1인당 가입액 3,000만 원 한도로 펀드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배당소득을 종합소득에 합산하지 않고 원천세율 14%(지방세 포함 15.4%)를 적용해 분리과세한다는 게 정부 방침입니다.
소득이 많을수록 자연스럽게 세제 혜택 규모는 커집니다. 하이일드펀드에 3,000만 원을 투자한다면 연 수익률을 5%로 가정할 경우 최대 150만 원, 6%와 7%일 때 각각 최대 184만 원과 215만 원의 절세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높은 공모주 청약 수익률을 간접적으로 누리게 된다는 점도 인센티브입니다. 현행 법령은 코스피·코스닥 공모주 물량의 5%를 하이일드펀드에 배정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공모주가 담기면 펀드 수익률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코스닥 공모주 우선 배정 비중이 10%로 상향 조정되기까지 합니다.
노후 대비나 자녀 학자금 마련 등을 위한 안정적 장기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개인 투자자가 눈여겨볼 만한 채권 상품도 있습니다. 이르면 올 하반기, 늦어도 내년 상반기 발행을 목표로 정부가 준비 중인 ‘개인투자용 국채’입니다. 애초 서민 장기 저축을 돕겠다는 목적을 갖고 국가가 개발한 데다 매입 자격을 개인으로 한정한 만큼 명실상부 국가 대표 ‘개미 전용’ 금융 상품인 셈입니다.
정부 소개는 이렇습니다. 일단 만기에 원금·이자를 일괄 수령하는 원금 보장형 저축성 상품입니다. 국민 중장기 자산 형성 지원 취지에 걸맞도록 만기가 10년 또는 20년인 장기물로 구성됩니다.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는 상품답게 혜택이 파격적입니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최고 세율이 49.5%인 종합과세를 피할 수 있도록 이자 소득에 대해 14% 세율로 분리과세할 뿐 아니라 기본 이자의 30%에 달하는 가산금리까지 얹어 준다고 합니다.
금리는 고정됩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전에 공고한 이자율(표면 금리)로 발행한다는 게 정부 계획입니다. 공개시장에서 입찰을 통해 금리가 결정되는 일반 국고채와 다릅니다. 일단 제1금융권 평균인 3%대 초반 기본금리에 30% 가산금리를 더해 4%대 초중반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쪽으로 정부가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3월 말 정부가 보도자료에 사례를 실을 때 가정한 금리는 3.5%입니다. 40세부터 20년물을 매월 50만 원씩 매입할 경우 60세부터 달마다 약 100만 원을 수령할 수 있게 되고, 자녀가 네 살이 될 때까지 4년간 20년물에 다달이 30만 원씩 투자하면 아이가 대학에 다닐 20~24세 시기에 매달 약 60만 원으로 꼬박꼬박 돌아오리라는 게 정부 예상입니다.
다만 한계가 없을 수는 없죠. 개인 간 거래가 금지되고 10년 이상 장기물로만 발행된다는 점입니다. 추가 가산금리나 복리 혜택 같은 더 강한 유인책을 기재부가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