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제3자 변제' 해법을 거부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며 법원에 공탁을 신청했지만 하루 만에 난관에 부딪혔다. 법원 공탁관이 '당사자 의사에 반해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는 법적 판단에 따라 불수리 결정을 내리면서다. 외교부는 즉각 반발해 이의 절차에 착수했지만, 강제동원 배상문제를 서둘러 마무리하려다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광주지방법원 소속 공탁공무원은 4일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의 전날 공탁 신청에 대해 "사유가 없다"고 판단해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의 제3자 변제에 반대하는 내용 증명을 보내는 등 거부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점이 반영된 결정이다.
외교부의 나머지 공탁 신청 건도 순탄치 않다. 광주지법은 이춘식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 신청은 서류 미비 등의 이유로 반려했고, 전주지법에 접수된 공탁 건에 대해서도 보정 권고가 내려졌다. 현재까지 공탁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한 건도 없다.
외교부는 "법리상 승복하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외교부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통해 "공탁 공무원이 형식상 요건을 완전히 갖춘 공탁 신청에 대해 '제3자 변제에 대한 법리'를 제시하며 불수리 결정을 한 것은 공탁 공무원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자 헌법상 보장된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의 절차에 착수했다.
공탁 절차가 하루 만에 법원 문턱에서부터 막히면서 "제3자도 변제 공탁이 가능하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다"고 설명했던 외교부 입장이 멋쩍게 됐다. 이에 허술한 업무 처리는 물론 "일본 피고 기업의 채무를 하루빨리 없애주기 위해 과도하게 서두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외교부는 전날 갑작스러운 공탁 절차 개시 이유로 △3자 변제를 거부한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시민단체의 모금 운동 전개와 △해법을 일찍 수용한 피해자들과 늦게 받아들인 피해자 간 형평성 문제를 들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배상금을 법원에 맡겨두고 피해자나 유족이 찾아가게 함으로써 배상 절차를 마무리 지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재단이 공탁 절차를 밟으면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채무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피해자 측이 공탁 무효소송을 예고한 만큼 정부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진다 해도 강제동원 배상을 둘러싼 공방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올 3월 정부는 2018년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 15명(생존 3명)의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일본 피고 기업 대신 재단이 지급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을 발표했다. 이후 현재까지 11명의 피해자(유족 포함)가 판결금을 수령했지만 나머지 4명은 전범기업의 채무를 변제해 주는 정부 해법에 반발해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