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각자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린다.
박유진(로컬앤컴퍼니 대표) 순천에서 로컬앤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영상과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 순천에서 나고 자라 최근까지 과학 교사로 일했다.
이태경(문화기획자) 수도권 고등학교 졸업 후 순천대 영어교육과를 다녔다. 졸업 후 영어학원을 운영하다 2017년부터 문화기획을 시작했다. 밴드 활동을 했는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2019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도심 빈집을 리모델링해 공유공간 썬더그라운드를 운영한다. 지금은 순천이 아니라 전남 강진군의 음악도시 조성을 담당하고 있다.
이경란(미라클뮤지엄 대표) 교육과 행사를 주로 진행하는 문화기획사 미라클뮤지엄을 운영하고 있다. 순천에서 나고 자랐으며 교육을 전공했다. 현재 다양한 교육 콘텐츠와 문화 콘텐츠들을 기획하고 개발하며 다양한 문화기획 활동을 하고 있다.
_여러분이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만 해도 전남의 대표 교육도시인 순천에는 젊은이들이 많았을 텐데.
(유진) 전통적으로 젊은이 문화는 순천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 여수나 광양에서도 많이 놀러 왔다. 하지만 순천 청년들이 광양과 여수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건 드물었다.
(태경) 주말이나 평일 오후 다른 지역 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순천 시내에 많이 보였다. 지금은 순천 원도심도 공동화가 심각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인근 곡성, 구례, 완도 등지에서 순천고와 순천여고로 유학을 많이 왔다.
_그 20여 년 사이 무슨 일이 있어서 청년들이 떠나는 지역이 됐나?
(유진)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와 수입인 것 같다. 제 동생이 간호사인데, 수도권 병원과 급여 차이가 커 다시 내려오기 어렵다고 말한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인근 도시 학생들이 즐길 것을 찾아 순천의 원도심으로 몰려들었는데, 이제는 광양, 여수에도 젊은이들의 편의시설이 갖춰지면서 그런 유입도 크게 줄었다.
(태경) 유명 학교가 있다는 게 장점이었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일부 부작용도 생기는 것 같다. 특정 학교 출신 여부에 따라 소위 진골, 성골, 육두품이 나눠지기도 하고 타 지역에서 순천살이를 결심한 젊은이들에게 장벽이 되기도 한다. 나도 20년간 살고 있지만 종종 타지인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청년이 머무는 순천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환대하는 문화가 확산해야 하며 서울 등 대도시의 모습을 순천에 적용하기보다는 순천다움을 발굴하고 고유의 정체성으로 순천이 가진 매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_그래도 순천은 순천만 갈대도 있고, 브랜드화할 것들이 많아 보이는데.
(유진) 갈대는 매년 베어줘야 갯벌 자정 능력이 향상돼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된다. 매년 시가 8,000만 원 예산을 들여 갈대를 제거한다. 이렇게 베어버린 갈대 활용방안을 고민하다, 갈대 뿌리에 있는 성분이 항산화 효과가 높다는 논문을 발견했다. 그래서 갈대 뿌리를 이용한 마스크팩 ‘예뻐지러 갈대‘와 반려동물용 미스트 ‘산책 갈대’를 개발했다. 갈대로 건축재를 만드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또 갈대를 이용한 착화제 개발도 시도했는데, 시제품 개발 후 참가한 사업화 컨설팅에서 비관적 조언이 많아 중단했다. 컨설턴트가 “이건 시제품 단계에서 멈춰야 하고, 양산 단계로 가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말려서 화장실에 가서 살짝 울고 왔다.
_청년들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려면 지자체 지원이 중요할 것 같다.
(태경) 그렇다. 취업이라는 부분에서 생각한다면 순천은 인근 지자체에 비해 기회나 인프라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2019년도에 순천은 관광객 1,000만 명을 달성했고 현재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통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의 자립을 위해서는 관광이나 정원산업과 관련된 지역 청년들의 성장 기회 마련과 창업, 고용지원 등이 필요할 것이다.
(유진) 지자체 지원금에 의존도가 높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청년기업의 지속적 성장보다는 소액의 지원금을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는 시혜적 성격이 강하다. 큰 행사는 지역 청년기업보다 외지 대형 업체에 거액을 주고 맡기는 식이다. 씨만 뿌려 놓고 새싹이 자라면 그걸 키우기보다, 다른 데에 또 씨를 뿌리는 걸 반복하는 격이다.
(태경) 지자체 행사에 참여하는 지역 청년 예술가들에게 200만~1,000만 원 예산으로 신선하고 새로운 걸 요구한다. 반면 전국 시장이 그렇기는 하지만 유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공연 연출이나 섭외에는 수억에서 수십억 원까지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 간극이 문제다. 지역에서 문화기획이나 콘텐츠 개발하는 청년 중에 과연 1억 원이 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거나 참여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역 청년기업의 자생력과 실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대책이 필요하다.
(경란) 물론 지역 청년기업의 역량이 대규모 사업을 맡기에는 부족한 점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큰 프로젝트를 수도권 등 외지 업체에만 맡긴다면 문제는 늘 반복된다. 사업체 선정 시 지역 업체와 수도권 업체 간 비율을 정해 컨소시엄으로 수행할 기회를 확대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지역 업체는 전문성을 더욱 갖추게 될 것이다. 수도권의 업체 또한 지역에서 사업을 함에 있어 풀기 힘든 현장수행능력이 제고되어 결과적으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_순천은 여수나 광명과 생활권이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메가시티가 조성된다면 바람직한 건지.
(태경) 고흥군과의 결합이 더 이로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성군 벌교를 넘어가면 고흥이다. 거리상 멀기는 하지만 우주산업이 발달한 고흥군과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투자협약을 맺은 순천시가 연계한다면 시너지가 더욱 클 것이라는 계산이다.
_아무래도 여수 광양 등과는 경쟁의식도 있고 해서 통합이 껄끄러울 수 있겠다.
(유진)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나는 여수의 청년 사업가들과 네트워크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엔 광양의 청년 활동가들과도 교류하기 시작했는데 비슷한 듯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시각 차이들도 보인다.
(경란) 나도 세 도시가 통합되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져 청년 사업가들의 설 자리가 많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각 지역을 깊이 들여다보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우선 정치적으로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가 얽혀 있어 물리적으로도 통합이 어렵다. 세 도시 교육사업 업체들끼리 만남도 갖고 협업도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 문화행사 기획은 여러 전문 분야 업체들이 협업하는 복잡한 구조라, 이런 심리적 지리적 경계가 무너진다면 시너지 효과가 클 수 있을 텐데 현실이 그렇지 못해 아쉽다. 예를 들어 순천에는 대규모 문화공간이 부족하지만, 여수에는 예울마루라는 큰 공간이 있다. 하지만 관할 시가 다르기 때문에 순천 업체가 이용하려면 대관료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광양 도립미술관도 상황이 비슷하다.
_끝으로 순천 젊은이만의 고민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태경) 인근 지역과 사람을 가깝게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앞서 말한 환대의 문화도 더욱 확산해야 할 것이고 지역 내에서 경쟁이나 편 가르기보다는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특히 우리 삶에 대한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시선이 ‘정치적’으로 왜곡되지 않는 문화적인 도시 순천이기를 바란다.
(유진) 대중교통이 턱없이 부족하다. 순천에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광양 중마동까지 가려면 배차 간격이 1시간인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순천과 여수 사이 버스 노선이 생긴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다. 순천 인근 관광지로 연계되는 대중교통도 너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