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서한' 민주당에 발끈한 외교부... 정부 권한 침해? 정치 중립 위반? [문지방]

입력
2023.07.04 13:00
野, 태도국 18개국에 '오염수 저지 연대하자'
당사국 아닌 제3국 접촉은 '외교부 권한 침해'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국가 외교 행위의 단일성 측면에서 매우 유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이해당사국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소속 피지, 마셜제도 등 18개국에 국제 연대를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하자 외교부가 지난달 25일 출입기자단에 보낸 입장입니다. 평소 점잖은 외교부답지 않게 “헌법상 행정부의 고유 권한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며 발끈했습니다. 무엇보다 정부 부처가 정당의 행위를 평가하고 공개 비판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입니다.

민주당은 곧바로 “국회가 가진 고유 기능인 의회 외교에 대한 몰이해”라며 맞받아쳤습니다. 외교가 외교부만의 전유물이냐는 겁니다. 민주당은 △국회의 감시 견제 기능에 외교 문제가 예외일 수 없고 △의회 외교는 외국 의회나 정부를 상대로 펼치는 보장된 활동인 데다 △국민의 다수가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야당이 대신하고 있다는 논리로 서한 발송의 정당성을 강조했습니다. 실제 정부가 나서지 못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의회 외교로 빈틈을 메운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민주당은 외교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소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이 과거 문재인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으로서 의원 외교를 한 사례도 굉장히 많다”며 “외교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위로 비칠 수 있는 입장을 낸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과거 국민의힘이 한 것은 공공외교이고, 민주당이 한 것은 국익저해활동이냐는 항변입니다.

국힘도 과거 中日에 ‘항의 서한’… 해외서 文 정부 비판도

민주당 말대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과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 적극적 외교 행보를 보였습니다. 2001년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미래연대는 일본 역사 교과서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항의 서한을 채택해 주한 일본대사관에 전달했고요. 2004년에는 당 차원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관련해 주한 중국대사관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당시 한나라당 국제위원장으로 현장에 있었습니다.

정부 정책을 대외적으로 비난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2018년 1월 나경원 한국당 의원이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에 “평창올림픽의 평양올림픽화를 막아야 한다”며 “남북단일팀 구성과 한반도기 공동 입장을 우려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이 대표적입니다. 한 달 전에는 같은 당 홍준표 대표가 일본 도쿄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새로운 정부가 북핵 대처를 제대로 했다면 제1야당 대표단이 일본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대놓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당이 2017년 9월,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미국에 특사단을 파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과 같은 잣대로 보면 외교부가 ‘월권 행위’라고 지적할 만한 사례들입니다. 하지만 당시 외교부는 조용했습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여당 대표를 건너뛰고 야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단독 회동한 것에 비견되는 ‘여당 패싱 사건’도 있었는데요. 2019년 7월 24일 오전 당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방한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단독으로 만나 안보 정책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전달한 겁니다. 여당 원내사령탑인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은 아예 잡히지 않은 데다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하기 전에 이뤄진 일정이라 뒷말이 무성했습니다.

핵심은 당사국이냐, 제3국이냐

그런 외교부가 이번에는 왜 총대를 메고 전면에 나섰을까요. 대통령실이나 여당 입김이 작용한 것일까요. 지난해 8월 중국이 기존 ‘사드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 불참, 한미일 3각 군사동맹 불가)에 이어 ‘1한’(사드 운용 제한)까지 들고 나오자 당시 외교부는 “이전 정부가 대외적으로 입장을 밝혔던 것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된다”는 입장을 밝히며 ‘야당 탓’으로 미루는 듯한,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니 유독 후쿠시마 오염수 사안에만 과민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법합니다.

그러나 외교부의 설명은 다릅니다. 과거 의회 외교의 상대는 모두 당사국이었는데 이번에는 제3국을 대상으로 했다는 겁니다. 직접적인 당사국이 아닌 제3국에 서한을 보내는 행위는 ‘국가 행위의 단일성’ 측면에서 정부의 외교에 부담이 된다는 거지요. 협상과 교섭의 전권은 외교부에 있으니 명백한 권한 침해인겁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특히 ‘연대하자’는 대목을 문제 삼았습니다.

실제 외교부는 오염수를 직접 방류하는 일본을 상대로 한 야당의 외교 행위는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지난 4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양이원영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출 저지 대응단'이 현지를 방문할 때도,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오염수 방류 저지를 위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개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을 때도 외교부는 가만히 지켜만 봤습니다.

제3국에 “정부를 건너뛰고 국제적으로 연대하자”는 제안은 외교적 혼선을 빚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민주당 서한을 받은 태도국들은 외교부에 그 사실을 알려왔다고 합니다. 지난 5월 한·태도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으로 오염수를 국제법과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했는데도 민주당이 반대되는 서한을 보내자 태도국 입장에선 어리둥절했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외교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에 휘둘리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곳이 외교안보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통일부와 국방부는 지난해 각각 탈북 어민 북송 사건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전임 정부의 입장을 뒤집으며 가혹한 홍역을 치렀습니다. 이번 민주당의 ‘태도국 서한 사태’도 그 연장선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정승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