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발명가가 될 수 있을까... 특허청은 요즘 이 걱정에 빠졌다

입력
2023.07.03 19:10
인간 지원 AI, 2040년 스스로 판단 가능
특허청, 'AI 패소' 판결 후 이례적 설명회
"AI 개발자 항소해 특허법원서 다뤄지길"

인공지능(AI)은 이미 꽤나 많은 영역에서 인간 지성을 따라잡거나, 인간의 수준에 근접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이미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거나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하며, 웬만한 사람보다 똑똑한 지능을 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AI가 '이미 있던 것을 학습'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없던 것을 발명'하는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여기서 하나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과연 AI가 발명의 주체(특허권자)가 될 수 있느냐이다.

지난달 30일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AI와 특허 간의 관계를 고찰해 볼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였다고 한다. 미국의 AI 개발자 테일러 스티븐 엘은 특허청장을 상대로 "AI가 특허권을 출원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현행법은 "특허권자를 발명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에선 사람만 특허권자 인정

이번에는 AI가 패배했지만 AI의 성과가 눈부시게 발전한다면 언젠가 AI를 발명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질 수도 있는 일. 3일 특허청이 이번 판결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별도 설명회를 자청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특허청 관계자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테일러 측에서 이번 판결에 불복, 항소를 제기해 고등법원(특허법원)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허청이 "2심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이런 뜻을 밝힌 건 아니다. ‘발명자로서 AI의 법적 지위'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기대한다'는 표현을 썼다. 산업, 과학, 학술, 의학,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AI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현실을 반영, 이번 논란을 계기로 AI와 인류의 공존을 모색해 보겠다는 것이다. 한국 특허청은 전 세계 출원 특허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5개국 특허청(IP5) 중 AI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2040년 인간과 AI 신세가 바뀐다

설명에 나선 김지수 특허심사기획국장은 “현재 반도체 칩 설계, 신약개발, 작곡 등에서 도움을 주는 존재인 AI가 특허권자가 된다면,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특허를 AI가 출원하고, 그 특허를 발판으로 기업으로부터 특허권 사용료를 받아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업과 인류를 통제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러운 예측을 내놓았다. 지금은 AI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지만, 특허권자의 지위에 오른다면 사람과 기계 사이에 ‘주객’이 바뀌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다.

특허청은 2040년을 AI의 티핑포인트(극적 전환점)로 전망했다. AI는 현재 인간의 질문에 '답을 하는 수준'이지만, 그 때가 되면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이 하는 수준의 '의사 결정’을 스스로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AI가 ‘지구 생태계에 도움이 안 된다’며 인간을 말살하는 장면이 이 이후 단계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허청은 앞으로 AI를 가장 많이 쓰게 될 영역을 군사 안보 분야로 보고 있다.

특허청은 20일 특허청 홈페이지에 '인공지능과 발명' 코너를 개설하고, 주요 정부 사이트 등에 AI를 발명자로 인정할지에 대한 국내외 논의사항, 주요국 판결, AI 관련 발명 심사기준 등을 게시한다. 9월 말까지는 AI 활용 실태, AI 발명 법제화·소유권 등에 대한 설문조사도 벌일 예정이다.

대전=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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