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상 영웅 제시 오언스는 1936년 하계올림픽 육상 100m에서 10초 2 세계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 기록은 1956년까지 20년 동안 건재했다. 즉 1937~56년의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금메달리스트들은 1936년의 오언스만 못했다. '금세기에는 결코 깨지지 않으리라'던 100m ‘마의 10초 벽’은 1968년 미국 육상선수권에 출전한 짐 하인스(9초 99)에 의해 깨졌다. 2009년 우사인 볼트는 9초 58에 100m를 주파했다.
모든 기록경기의 ‘기록’들은 깨어짐의 숙명 위에 이룩된다. 그게 모두 선수의 공은 아니었다. (훈련)기술의 끊임없는 발전, 자원과 자본 투자 증가, 선수층이 두터워지면서 점차 나아져 온 경쟁의 질, 스포츠 과학의 발전과 장비 품질 즉 소재와 디자인 개선, 영양 등 선수관리시스템 향상 덕에 선수들의 몸 자체도 점차 나아졌다.
환경과 룰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1948년 런던 하계올림픽에서 스타팅 블록이 도입되기까지 스타트 라인의 선수들은 모종삽으로 자기 발에 맞는 구덩이를 파야 했다.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까지 선수들은 콘크리트 트랙에서 달렸다. 콘크리트 트랙은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더 흡수해 인조잔디 트랙에 비해 2~3% 기록상으로 불리하다. 64년 미국 선수 “불릿” 밥 헤이스는 세계 신기록 타이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지만, 그가 인조트랙에서 달렸다면 이론상 9.76도 가능했을 것이다.
육상 10,000m의 '마의 벽'은 26분대 진입이었다. 1965년 27분대에 들어선 이래 30년 가까이 굳건하던 그 벽은 1993년 7월 5일 노르웨이 오슬로 국제대회(Bislett Games)에서 케냐 선수 요베스 온디에키(Yobes Ondieki)에 의해 깨졌고(26분 58초 38), 바로 1년 뒤 다른 케냐 선수에 의해 또 한번 단축됐다. 하지만 온디에키가 깬 것은 기록을 넘어 심리적 장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