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엔화 약세)를 이용한 외국인의 ‘바이 재팬’ 열풍에 도쿄 도심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롯폰기 등 일부 지역에선 건축된 지 10년 이상 지난 아파트가 건축 당시 가격의 2.5배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신축일 때 가장 비싸고 점차 가격이 낮아지는 일본의 ‘집값 상식’이 도쿄에서 무너진 것이다. ‘거주’보다 ‘투자’에 유리한 주택 구매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부동산정보회사인 ‘도쿄간테이’의 중고 아파트 가격 정보를 바탕으로 지은 지 10년 된 아파트 가격의 평균 호가를 신축 당시와 비교했다.
2022년 수도권 지역의 10년짜리 구축 아파트 평균 호가는 신축 당시의 132.5%로, 전년보다 12.7%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축과 신축 아파트의 가격 역전 현상은 2020년 시작됐다. 2018년엔 10년짜리 구축 아파트의 평균 호가가 신축 당시의 91.4%였다.
역세권별로 보면, 롯폰기1초메역 인근의 10년 구축 아파트 가격 상승률(신축 때의 251.6%)이 가장 높았다. 신오차노미즈역 근처는 208.1%, 요요기우에하라역 주변은 192.0%로 뒤를 이었다. 모두 도쿄 도심 지역이다.
도심 아파트 가격 급등은 외국인 투자의 영향이 크다. 홍콩, 싱가포르 등 비싼 집값으로 이름난 아시아 도시 국가에 비해 도쿄 주택가격은 아직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지난해부터 가속화한 엔저 현상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구매력은 더 커졌다. 일본 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도쿄로의 인구 집중은 계속될 전망이어서 투자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더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들은 언제든지 매각할 수 있도록 아파트를 임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도쿄 아파트가 외국인의 투기 대상이 되면서 도쿄 시민들은 교외로 밀려나고 있다. 부동산 시장 분석회사 도쿄간테이의 다카하니 마사유키 연구원은 “자금 여유가 있는 '파워 커플'조차 도심 아파트를 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파워 커플’이란 일본의 고소득 맞벌이 부부를 가리키는 말로, 수도권 신축 고층아파트의 주된 수요층이다. 니혼게이자이는 “도심 아파트는 이제 ‘거주용’에서 ‘판매용’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