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업체 소속인 A씨는 의료기관과 도급계약을 통해 보안경비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경비 업무 외에도 입원 환자의 외래 진료를 돕고 처방전을 병원 측에 전달하는 업무까지 맡게 됐다. 계약 범위에 벗어나는 데다가, 용역업체 지시를 받고 일하는 도급계약상 의료기관은 A씨에게 업무를 지시할 권한이 없음에도 멋대로 일을 시킨 것이다. A씨는 소속 용역업체에 부당함을 주장했지만 담당자 반응은 미온적이었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파견 근로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파견법이 시행 25년을 맞았지만 실제로는 불안정 고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현장에선 A씨 사례처럼 도급계약을 맺고도 사실상 파견직과 다를 바 없이 사용사업주가 직접 업무 지시를 하거나 정부 허가를 받지 않는 등 불법 파견이 횡행한다는 지적과 함께 차라리 파견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28일 직장갑질119가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파견법 위반 진정사건은 401건으로 이 가운데 제5조(파견금지업종 파견)와 제7조(무허가 파견) 위반 사건이 57.9%(232건)를 차지했다. 파견법상 △건설 공사 △선원 △간호조무사 △운전 등 특정 업무에는 파견이 금지돼 있으며 허가 업종이라도 고용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 위반 행위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여러 업체가 얽힌 계약 특성상 노동자가 자신의 계약 형태를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현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사용사업주가 도급 계약을 맺고도 직접 업무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고, 파견 불가 업종은 더욱 그렇다"면서 "파견법 시행 25년이 지났으니 '법을 몰랐다'는 변명은 용납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전수조사를 주문했다.
파견법이 되레 불안정 고용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 노무사는 "파견법 위반 진정사건은 2018년 987건, 2019년 951건 등 1,000여 건에 육박했지만, 코로나19 이후 400건대로 뚝 떨어졌다"면서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인력 감축이 필요한 사용사업주가 파견 노동자부터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직장갑질119는 제 역할을 못하는 파견법을 손질해야 한다며 △불법 파견 적발 시 정규직 고용 의무화 △처벌 수위 강화 △상시업무 비정규직 사용 금지 등을 요구했다. 단체는 "정부·여당은 파견업종 확대, 기간 연장 등을 국정과제로 정하고 (파견 금지 업종인) 제조업까지 파견을 허용하려 한다"며 "노동착취 수단이 된 파견법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