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도, 프리고진도 침묵 깨고 '뒷수습'... 무장반란 사태 봉합은 '제각각'

입력
2023.06.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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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반란, 실패할 운명... 어쨌든 진압됐을 것"
"유혈 사태 막으려 했다... 멈춘 병사들에 감사"
외신 "러 통제권 강조... 프리고진엔 경멸 표시"
프리고진 "반란 정당... 정권 전복은 목적 아냐"
로이터 "프리고진 전용기, 벨라루스 도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6일(현지시간) 나란히 침묵을 깼다.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 사태 종료 이틀 만이다.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수습에 나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반란은 실패할 운명이었고, 어떤 경우든 진압됐을 것"이라며 자신의 통제력을 과시했다. 프리고진도 "정권을 정복할 목적은 없었다"며 푸틴 체제 안정에 일단 보조를 맞췄다. 다만 발언의 결은 확연히 달랐다.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을 '배신자'라고 지칭하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반면 프리고진은 무장반란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하루 만에 철군한 건 자신의 의지일 뿐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푸틴, '통제력 과시·권위 회복' 방점... '바그너 감싸기'도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과 영국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밤 푸틴 대통령은 검은 양복을 입은 채 굳은 표정으로 TV 연설에 나섰다. 지난 24일 밤 무장반란 사태 종료 후 처음으로 내놓은 공식 입장이었다.

5분가량의 짧은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푸틴의 리더십 상실 증거' '푸틴 정권 종말의 서막' 등으로 보는 외부 시선을 일축하려 애쓴 셈이다. 그는 "이번 사태는 '모든 협박, 혼란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점을 보여 줬다"고 했다. 이어 "사태 처음부터 대규모 유혈 사태를 피하도록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바그너 용병들이 모스크바를 200㎞ 정도 남겨둔 지점까지 별다른 저항 없이 진군했던 건 '동족상잔을 막으려는' 자신의 의도였다는 주장이다.


바그너 수사 무혐의 종결... 푸틴 "프리고진은 배신자"

반란에 참여한 용병들도 다독였다. 푸틴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에 멈춰 서 유혈 사태로 향하는 선을 넘지 않은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애국자"라고도 불렀다. 반란 참여 용병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도 재확인했다. 그는 "국방부와 계약하거나, 집에 가거나, 벨라루스로 가라"며 선택지를 제시했다. 실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무장반란 사태와 관련, 프리고진과 다른 용병들에 대한 범죄 수사를 무혐의로 종결했다고 27일 밝혔다.

그러나 프리고진을 향해선 분노를 표했다. 그는 프리고진을 실명 대신 '반란 주동자'라고 지칭하며 "러시아 병사들이 서로를 죽이기를 원했다. 조국과 자신의 추종자들을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눈에 띄게 화난 모습이었고, 경멸감을 드러낸 게 분명했다"고 전했다.

이번 반란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평가하기도 했다. 러시아인의 단결과 용기를 볼 수 있었다는 이유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안보책임자 회의를 주재해 반란 대응을 치하하고, 해외 정상들과 통화한 사실도 공개했다. '러시아는 안정을 찾았고, 푸틴 체제는 계속 공고할 것'이란 메시지였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푸틴이 흔들리는 국가 통제권을 재확인하고, 안보상 심각한 결함이 노출됐다는 우려를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프리고진, 푸틴과 '화해' 시도?... 반성은 안 해

이보다 4시간 전쯤, 프리고진도 11분짜리 음성 메시지를 공개했다. 그는 "(모스크바 진격은) 항의 시위였을 뿐, 정부를 전복시키려던 게 아니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체면을 고려한 발언이다. 최소한 푸틴 대통령과는 '화해하고 싶다'는 의중이 담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성의 뜻을 표하진 않았다. 프리고진은 "우리는 공격 의사를 보이지 않았는데, (러시아 정규군) 미사일 및 헬리콥터의 공격을 받았고, 그것이 (반란의) 방아쇠가 됐다"며 무장반란을 정당화했다. 국방부가 바그너를 휘하에 둘 목적으로 '7월 1일까지 정식 계약하라'고 명령한 데 대한 불만도 거듭 표했다. 또 바그너가 하루 만에 모스크바까지 약 1,000㎞를 거침없이 진격한 사실도 과시했다. 러시아군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가 자신의 '타깃'이었음을 강조한 셈이다.

바그너 내부에서는 무장반란을 주도했으면서도 하루 만에 이를 포기한 프리고진에 대한 비판이 확산하는 분위기라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제재 명단에 오른 프리고진의 전용기(엠브라에르 레거시 600)가 27일 오전 벨라루스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또, 그를 벨라루스의 한 호텔에서 봤다는 목격담도 러시아 현지 언론 보도로 나왔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조아름 기자
정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