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식량배급제 시절의 영국인들

입력
2023.07.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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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제2차 세계대전 영국 식량배급제

제2차 세계대전 영국인들은 나치 공습의 피해를 입긴 했지만 전장에서 한발 비껴 있었다. 유럽 본토인들보다는 나았으나 그들 역시 식량배급제 등으로 고통받았다. 당시 영국은 식량의 약 2/3를 수입에 의존했다. 곡류와 육류, 치즈 설탕 등 연간 약 2,000만 톤의 식량 수입 라인이 개전과 동시에 막혔다. 비축분은 당연히 군인에게 먼저 보급됐고, 그나마도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영국 민간인 인구는 약 5,000만 명. 미국 ‘무기대여법’ 군수품에는 식량도 포함돼 있었다.

영국 정부는 1939년 9월 휘발유를 시작으로 베이컨과 버터 설탕 육류 등 순으로 전 국민 배급제를 시행, 42년 8월 무렵엔 채소와 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식량을 배급했다. 시민들은 정부 배급 쿠폰(ration book)으로 지정 장소에서 식량을 타야 했다. 1인당 양은 성별 연령대별로, 여성의 경우 임신 여부에 따라 차등을 두었지만, 평소 먹던 것보단 훨씬 적은 양이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그나마도 계속 줄어 예컨대 버터 배급량은 성인 1인당 매주 8온스(약 227g)에서 종전 무렵 2온스(57g)에 불과했다. 군인에겐 매주 380g이 지급됐다. 영국 정부는 채소를 직접 재배하도록 꾸준히 독려했다. 물론 지하시장은 있었지만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었다.

전시 영국의 혼외 출산, 특히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위해 미군 등 외국 군대가 장기 주둔하던 시기 사생아 출산율이 폭증한 데는, 물론 남자들이 모두 전장에 있었던 탓이 컸지만 어린아이들을 둔 주부들의 배고픔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전시 식량배급제는 14년 만인 1954년 7월 3일 육류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고 영국 시민들의 전쟁은 그제야 끝이 났다. 하지만 일부 극빈층은 배급제 덕에 전쟁 이전보다 더 풍족(?)하게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