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올해를 시작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넘어선 '킬러문항'을 배제하겠다며 26일 킬러문항 판별 기준으로 제시한 22개 예시 문항들이 교육 현장에 되레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해당 문항들이 "수험생이 풀기에 까다로운 문제"라는 평가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면서도, 교육부가 설정한 기준만으론 어떤 유형의 고난도 문제가 수능에서 제외될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장 킬러문항 배제 원칙이 처음 적용될 9월 모의평가부터 수험생 혼선이 커질 거란 우려가 적지 않다.
킬러문항 예시는 최근 3년치 수능과 올해 6월 모의평가의 국어·수학·영어 영역에서 골라낸 것이다. 국어 영역에선 '고등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문과 전문용어를 사용해 배경지식이 있으면 쉽고 빠르게 풀 수 있는 문항'이 킬러문항으로 지목됐다. '동일론' '기능주의' 등 일상어와 거리가 먼 현대철학 용어가 사용된 6월 모의평가 14번, 기초대사량에 관한 과학 연구를 다룬 2023학년도 수능 국어 15·17번 등이다. 모두 3, 4개의 지문이 나오는 독서(비문학) 문제다.
어려운 학술 개념이 포함된 문제인 데다가 문제풀이 시간 제약을 고려하면, 이런 문제들은 수험생의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대표적 요인이 맞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직 고교 국어교사 A씨는 "문항당 1분 30초 내에 독해를 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고등학생에겐 무리인 부분"이라며 "정보를 (지문에) 압축적으로 구겨 넣은 느낌이라 국어교사들이 풀기에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생소한 개념이 들어간 문제라고 해서 교육과정에서 벗어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 지역 고교 국어교사 이모씨는 "독서라는 과목 자체가 다양한 분야의 글을 접하며 새로운 지식을 추론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문제에 따라 전문 용어가 쓰일 수도 있고, 학생이 마침 배경지식이 있는 내용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런 것까지 제약 조건으로 삼으면 낼 수 있는 문제가 없어진다"고도 했다. 6월 모의평가 국어 킬러문항은 EBS수능 교재에 포함됐던 소재가 쓰였다는 점에서 수험생들이 배경지식을 얻을 기회가 열려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학 역시 제시된 킬러문항이 단순한 고난도 문항인지, 공교육만 거쳐서는 풀 수 없는 문제인지 평가가 분분하다. 교육부가 "3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이 결합돼 문제 해결 과정이 복잡하고 고차원적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고 지적한 6월 모의평가 22번 문항이 대표적. EBSi 가채점을 기준으로 정답률이 2.9%에 불과할 만큼 어려운 문제인 건 사실이나, 여러 가지 개념 이해를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킬러문항으로 규정하긴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교육부는 세 가지 학습요소가 포함돼서 공교육에서 보지 못할 문제 유형이라고 했지만, 수학교사들 평가는 다르다"며 "(문제에 들어간) 세 가지 개념은 계열적으로 가까워서 아주 별개라고 보기 어렵다. 그저 새롭고 독창적인 문제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했다. 서울 지역 고교 수학교사 B씨는 "덧셈, 뺄셈, 곱셈을 쓰는 문제는 수학적 개념이 3개 쓰인 거냐"며 "무엇이 교육과정을 벗어났는지를 확인해줘야 하는데 정부 발표엔 그게 없다"고 비판했다.
다만 대학수학 개념을 미리 공부하거나 특정 선택과목을 들어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라면 킬러문항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교육부는 2022학년도 수능 수학 미적분 29번은 고교 미적분 교육과정뿐 아니라 대학에서 배우는 '테일러 정리'를 이용해서 풀 수 있고, 2023학년도 수능 공통과목 23번은 선택과목으로 미적분을 응시한 수험생이라면 '변곡점' 개념으로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했다. 염동렬 충남고 수학교사는 "문과에서 배우지 않는 변곡점 개념을 이과에선 2학년 2학기에 배우기 때문에 선택과목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교육부가 6월 모의평가에서 고른 수학 킬러문항은 주관식 문제들로 가채점 정답률이 2.9~10%였지만, 국어는 가장 정답률이 낮은 문항 14번도 36.4%를 기록했다. 정답률이 낮지 않은 문제도 킬러문항으로 분류하는 게 온당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가리는 데 있어 난이도는 참고사항 중 하나였을 뿐"이란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