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지난 5월 하순 발표한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각별히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농락한 주한 중국대사의 무례한 ‘전랑외교’ 여파가 이어졌고, 자녀 특혜채용으로 선관위 총장과 차장이 동시 사퇴하는 전대미문의 파란이 빚어졌다. 대다수 국민들로선 정기적인 통계까지 주시할 여력이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 통계는 현 정부 출범 이래 지금까지 나온 경제지표 가운데 가장 꺼림칙한 것일 수도 있다.
불황과 코로나19 여파 탓에 통계가 좋기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가구당 명목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4.7% 늘어난 월평균 505만4,000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물가 상승분 등을 반영한 실질소득은 458만 원으로 전혀 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가구당 흑자액은 116만9,000원으로 되레 줄었다. 가계 전반의 실제 생활형편이 1년 전보다 나빠진 셈이다.
가장 느낌이 좋지 않았던 건 분위별 소득증감과 분배지표였다. 소득 5분위별 실질소득 증감을 보면, 분위 60% 이하 중산ㆍ서민은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1.5%를 비롯해 2분위 -2.4%, 3분위 -2.1%로 모두 감소했다. 반면, 상위 40%인 4분위와 5분위는 각각 0.5%, 1.2% 증가했다. 그 결과 대표적 분배지표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6.45배로, 1년 전 대비 0.25배 포인트 높아져 지난해 3, 4분기 연속 호전되던 흐름이 다시 악화 쪽으로 꺾였다.
고소득층 소득 증가는 불황에도 선전한 대기업 임직원들의 임금 상승에 따른 근로소득 증가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반면, 서민 소득은 지난해 1분기만 해도 코로나19 손실보상금, 방역지원금 등이 풀렸으나, 올해는 지원이 줄면서 자영업자 등의 소득 격감이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소득분배 악화가 일시적 현상이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취약계층 일자리 사업을 조기 집행하고, 취약계층 복지제도 보장성도 강화하는 등 소득분배 개선에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등의 혁명적 발전과 글로벌시장 급변에 따라 경제시스템은 구조적으로 부와 소득의 집중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 저소득 계층에 ‘쌈짓돈’을 던져주는 방식으론 앞으로도 양극화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그저 나라의 부를 위에서 빼서 아래를 괴는 데만 신경 쓴 아둔한 포퓰리즘에 가까웠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실책을 바로잡겠다고 나섰을 때 환영했던 것이다. 실제 정부는 지금 성장과 번영의 파이를 키우는 데 힘을 쏟는 모습이 뚜렷하다. 야당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에서 모빌리티에 이르는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를 대폭 늘리고, 임시투자 세액공제를 부활키로 한 것만 해도 그렇다.
외교정책에서 대중관계 재정립에 나서고, 한미동맹 강화 및 한일관계 개선에 나선 것도 안보협력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과 시장 재편의 격변기를 맞아 ‘경제동맹’을 강화하는 실용적 결단이라고 볼 만하다.
하지만 우리 대기업과 국가전략산업 경쟁력이 세계를 주도한다 해도, 현 정부 동안 서민 생활형편이 이전보다 더 나빠진다면 이 정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 정부는 이번 분배지표 경고등을 무겁게 인식해 어떻게든 서민 생활형편이 점점 우상향하는 흐름으로 갈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안 그래도 부동산 보유세 완화나 대기업 세제 및 보조금 지원 확대 등에 대한 저변의 민심이 심상치 않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