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원 판결은 대법관 9명의 과반수 표결로 결정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표결 의견서 서명으로 확정된다. 즉 (다수) 의견서를 작성하는 판사가 다른 대법관들과 의견을 조율해 최종 문안을 완성한 뒤 서명을 받아 공개하기 전까지 표결 자체는 공식 판결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리고, 극히 드물긴 하지만 의견서 조율 과정에서 일부 판사의 의견이 달라져 표결이 뒤집히는 경우도 있다. 미국 프로복싱 헤비급 영웅 무하마드 알리의 베트남전 병역 거부에 대한 1971년 6월 28일 대법원 판결이 그 예였다.
1966년 2월 징집영장을 받은 알리(본명 Cassius Clay)는 즉각 징집거부 의사를 공개 표명했다. 무슬림 신자로서 신앙에 위배되는 전쟁에 가담할 수 없다는, ‘양심적 병역 거부’였다. 징병위원회는 그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지위를 인정받는 데 필요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알리는 켄터키주에서 텍사스주로 거주지를 옮겨 재심을 청구했지만 또 기각당했고 이듬해 6월 징병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 과정에 그는 선수 자격까지 박탈당해 약 3년 반 동안 링에 오르지 못했다.
연방대법원 판사들도 1971년 4월 23일 5대 3 표결로 그의 유죄를 인정했다. 당시 연방정부 송무전담 법무관으로 공직을 겸하던 서굿 마셜 대법관은 직무 관련성 때문에 표결에서 기권했다.
다수의견 작성을 맡은 존 할런 대법관이 의견서 작성 도중 쿠란 자료를 읽으며 알리의 항변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부합한다고 마음을 바꿨다. 하지만 4대 4. 하급심 판결로 확정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1966년 법무부 의뢰로 알리의 청구를 검토한 켄터키주 전 순회판사의 의견서, 즉 알리의 청원이 타당하다는 요지의 의견서를 법무부가 소송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감춘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은 재판의 기술적 하자를 근거로 8대 0으로 알리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