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한 것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후지만, 실질적 개전은 그해 3월 제정한 무기대여법(Lend-Lease Law)이었다. 유럽 전선을 지탱하던 영국과 소련을 위한 무제한 군수물자 지원법. 일제 진주만 공습도, 결과적으론 패착이었지만, 그에 대한 견제-보복이었다.
하지만 전쟁물자의 소련 인도는 그 자체로 험난했다. 태평양전쟁으로 해상 북서진 루트는 사실상 막혔고, 남대서양 아프리카를 돌아 이란을 경유하는 육송 루트는 너무 길었다. 북아프리카 전선과 지중해-수에즈 루트는 이미 추축국에 장악된 상태였다.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 대서양을 통해 북극해로 진입한 뒤 아이슬란드를 거쳐 핀란드 건너 소련 무르만스크 병참지대로 접근하는 루트. 그 루트는 하지만 빙하를 비롯한 계절적 장애 외에도 노르웨이를 장악한 독일 해군 전함과 유보트, 공군 전투기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험로였다. 호송대 지휘관이던 미 해군 중령 P.Q 에드워즈의 이름에서 유래한 ‘PQ 호송작전’은 1941년 8월 시작됐지만 독일군의 견제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942년 6월 27일 17번째 호송 작전 즉 ‘PQ-17’은 영국 해군이 지휘한 첫 대규모 영미연합 군수지원작전이었다. 소련 5개 사단에 공급될 항공기와 탱크 화포 등 15만6,000톤 규모의 군수품을 실은 35대의 수송선, 그 선단을 독일군의 해상 수중 공중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구축함과 순양함 등 41척의 군함.
하지만 독일군 주력함대의 대규모 공격 첩보를 입수한 영국 해군사령부는 7월 4일, 호위 전단과 수송선에 산개 항진이란 최악의 명령을 하달했고, 그 결과 수송선단은 유보트와 독일 공군 뇌격기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됐다. 목적지 아르한겔스크항에 입항한 것은 단 11척뿐이었다. PQ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유럽 전쟁을 지탱한 동부전선의 산소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