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필독서 중 하나가 된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서울의 빈민촌인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한 가족의 애환을 다루고 있다. 1981년 영화화되기도 한 이 소설에서 가장인 난쟁이와 아내, 그리고 세 자녀는 1970년대 서울의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삶의 기반을 빼앗기고 몰락해 간다. 특히, 이 소설에서 가족이 살고 있는, 삶의 기반이 되는 ‘집’의 이야기가 밑바탕에 있다. 소설은 무허가 건물에 살고 있던 난쟁이 가족이 3주 안에 집에서 자진 철거하라는 철거 계고장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난쟁이 가족과 같은 빈민층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행복동 일대가 주택개량사업으로 재개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할 권리를 부여받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 빈민인 그들에게는 새 집에 입주하기 위해 추가로 납부해야 할 돈이 부족해서 입주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게 된다. 그리고 팔았던 입주권을 되찾는 이야기도 펼쳐진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970년대의 서울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었다. 1960년 당시 250만 명에 채 못 미쳤던 서울의 인구는 1970년에 2배가 넘는 553만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10년 후인 1980년에는 약 300만 명가량이 더 늘어나 835만 명을 기록하게 된다. 이처럼 급속히 늘어나는 인구로 인해 사람들이 거주할 주택을 공급하는 일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주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정부는 신속한 주택공급을 위해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을 제정했다. 이 법을 통해 주택을 빠르게 건설하고 공급해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1962년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라 일컬어지는 마포아파트가 준공된 후, 1970년 한강맨션아파트가 건설되면서 고층의 주거건물은 쾌적하고 편리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짓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한 정부는 주택건설촉진법을 통해 여의도와 반포, 잠실에 대규모로 아파트를 공급하게 된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강남 일대와 목동, 상계동 등으로 아파트 건설이 본격화됐고, 1990년대에는 수도권 200만 호 주택건설정책에 따라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도 개발됐다.
아파트는 누군가에겐 새 보금자리를 위한 꿈이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비극이었다. 1977년에 시작된 주택청약제도로 인해 수많은 도시 젊은이들이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청약통장에 가입한다. 다른 한편에서 행복동의 난쟁이 가족처럼 아파트가 건설된 지역에 살던 소외계층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기도 했다. 소설의 서두에는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것과 같이, 우리는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편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희생이 없었다면 서울에 이렇게 많은 주택이 신속하게 공급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입주권을 가진 난쟁이 가족이 이 권리를 사려는 사람과 흥정하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한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한 추가자금이 충분하다면 입주권은 돈을 벌 수 있는 확실한 투자수단이었다. 주택이 건설될 토지의 수용을 손쉽게 해 두었기 때문에 주택공급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동시에 부동산 개발에 의한 투자이익이 커지기도 했다. 물론 정부는 이러한 개발이익을 개발업자가 모두 취하지 않도록 분양가격에 상한을 두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는데, 그로 인해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된 주택에 대한 권리를 취득한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이 정보를 모두 알고 있는 소설 속 부동산개발업자로 등장하는 젊은 청년은 부동산사업을 위해 행복동 일대의 입주권을 최대한 사려고 하는 반면, 세 남매 중 둘째인 영호는 시에서 주는 보조금으로는 새로 거주할 곳을 구할 수 없기에 입주권을 팔려고 한다. 그렇게 둘은 입주권을 25만 원에 거래한다. 그리고 소설의 후반부에서 이 입주권의 가격은 더 오르게 되고, 영호는 입주권을 일찍 팔았다는 것에 대해 후회한다. 입주권의 적정가격을 추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개발업자가 입주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이익, 즉 주변 시세와 분양가의 차이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영호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보조금 이하로는 팔 이유가 없다. 소설 속 ‘25만 원’은 아마 그사이 어딘가의 가격일 것이다. 다만 25만 원은 보조금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론적으로 흥정(bargain)에서 인내가 부족한 쪽은 얻는 것이 적기 마련인데, 당장 3주 안에 이주해야 하는 난쟁이 가족은 아주 절박했기 때문에 입주권을 일찍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을 위해 보조금을 더 많이 주었거나 직접 다른 주택을 마련해 주었다면 난쟁이 가족의 삶은 더욱 희망적이었을 것이다. 계층이동에 관한 일련의 논문은 어린 시절을 어디에서 그리고 어떠한 환경에서 보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특히 2016년 미국 경제학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린 논문에서 주거지원을 받아 빈민촌을 벗어난 가정의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대학 진학률과 소득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타났다. 난쟁이 가족처럼 빈민촌을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 소득 등의 성취가 특별히 좋지 않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건설에 따라 이례적으로 빠르게 주택이 공급됐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은 1990년대에야 비로소 공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지역에 따른 계층의 구분은 더욱 뚜렷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사회이동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이동은 주로 교육을 통해 이뤄지는데, 교육의 성취도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서울의 지역별 소득계층의 구분은 매우 뚜렷하다. 고소득층은 주로 강남 3구에 살고 있으며, 이들 지역의 교육 성취도가 더욱 높게 나타난다. 이들 지역이 아파트가 많이 분포한 지역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파트가 주로 공급된 지역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앞서 언급한 연구처럼 주거지원이나 임대주택 등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면, 혜택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더 활발한 계층이동을 보이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빈민층에 속한 사람들은 더 열악한 지역으로의 이주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삶의 터전이 개발되는 것에 반대할 수 없었고, 새로 짓는 집에 들어갈 형편도 되지 못했다. 빈민층이 더 나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정보가 부족했고, 사회적인 장벽이 존재했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난쟁이 가족도 결국 열악한 공장밀집지역으로 이사를 하고 가계가 쇠퇴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가족의 셋째이자 막내딸인 영희가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하지만, 이미 아버지인 난쟁이가 삶을 비관하여 자살한 이후였다. 이를 통해 소외계층에 있어 가족의 집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이 비단 난쟁이 가족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서울에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소외됐고, 소수의 사람은 이를 이용하여 큰돈을 벌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집’이란 자산증식의 도구라는 인식이 강하다. 집을 자산증식의 도구가 아닌 삶의 터전에서 바라보았다면 주택공급은 지금보다 더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나라의 성장은 더뎠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성장을 이룬 작금의 우리나라가 주택이 조금 부족해서 덜 성장한 가상의 우리나라에 비해 과연 더 행복하다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기성세대들은 행복한지, 청년들은 희망적인지에 대한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윤상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