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통일' 통찰 역사학계 거목 강만길 교수 별세

입력
2023.06.2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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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0세…근현대사 연구 거목
한국 현대사 '분단시대'로 명명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경남 마산 출신인 고인은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다 1967년 모교 교수로 임용됐다. 민주화 운동 참여로 1980년에 해직됐다가 4년 만에 복직해 강단으로 돌아왔다. 1999년 정년퇴임 후에도 활발한 연구·사회참여 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 역사 대중화를 위한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를 창간했고 상지대 총장을 지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 위원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내일을여는역사재단 명예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세기 대표 지식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18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일제의 정체성론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 후기 상업 발달을 실증적으로 추적, 연구했던 초기 저작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1973)은 한국 '자본주의의 맹아론'을 제기한 국사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그는 역사학이 분단시대 극복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분단과 통일을 한국 현대사의 주요 화두로 꺼냈다. 현대사 연구가 학계의 금기였던 유신시절 '분단시대 사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한국 현대사를 '분단시대'라 명명, 분단 극복과 평화 통일을 바라는 시각에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2권·1978)을 내는 등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분단시대에 대한 고인의 문제제기는 1980년대 이후 진보적 인문ㆍ사회과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학자 조희연의 ‘반공규율사회론’, 백낙청과 손호철이 주도한 ‘분단체제 논쟁’은 고인의 분단시대론으로부터 지적 자극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인을 "역사 안에 갇혀 있던 지식인이 아니라 역사 밖으로 걸어 나와 그 역사와 대결했던 용기 있는 지식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역작을 18권으로 모두 정리한 2018년 고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남북의 역사를 모두 포함한 20세기 우리 역사를 쓸 수 있을 때가 빨리 오길 바란다"는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한국민족운동사론', '고쳐 쓴 한국근대사', '역사가의 시간' 등을 펴냈다. 민족해방운동의 경제적 기초가 되는 식민지 시대 민중의 삶을 규명하기 위해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1987)를 출간하기도 했다. 1988년 제3회 심산학술상, 2000년 한겨레통일문화상, 2002년 만해학술상, 2005년 민족화해상, 2007년 청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고인과 인연이 깊은 민족문제연구소와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은 이날 "평생을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는 등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며 추모의 글을 올렸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고양시 청아공원이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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