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력 사용량이 4인 6,000가구와 맞먹어 일명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데이터센터(IDC)의 수도권 쏠림을 막기 위해 정부가 관련법까지 개정했지만 도리어 수도권에 추가로 짓겠다는 신청 건수가 정부 추산보다 375건이나 더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신청한 IDC가 수도권에 들어선다면 신규 원전(1,400㎿)의 40기에 해당하는 전력이 필요해 IDC를 수도권 바깥에 마련하도록 이끌 실질적 당근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한국일보가 확보한 한국전력의 '전국 데이터센터 전기공급 현황'에 따르면, IDC 사업자들이 전기 공급이 필요하다고 한전에 낸 '전력수전예정통지'는 4월 30일 기준 1,224건으로 이 중 76%가 수도권에 있다. 구체적으로 서울 70건, 인천 167건, 경기 688건에 달한다. 이들 IDC가 사용하는 전력 규모는 전국 7만7,684㎿, 수도권은 5만6,149㎿로 각각 신형 원전 56기, 40기를 돌려야 만들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한전 고시에 따르면, 100~300㎿ 전력 사용자는 3년 전, 300㎿ 이상 전력 사용자는 4년 전 한전에 나중에 전력 사용을 신청한다는 의미로 '전기사용예정통지'를 해야 한다.
현재 한전이 전기를 공급하는 전국의 IDC는 147개로, 이 IDC의 전력 용량을 모두 끌어모아도 원전 1.3기에 불과한 1,876㎿에 그친다. 앞으로 어마어마한 전력이 필요한 셈이다.
올해 초 정부는 IDC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을 내놓으며 2029년까지 추가로 들어선 IDC 전국 637개(전력 규모 4만1,467㎿), 수도권에 550개(3만5,596㎿)가 될 거라는 전망치를 내놨다. 지난해 9월 IDC 신청 건수를 바탕으로 예상한 규모다. 구체적으로 서울에 75곳(4,785㎿), 인천에 85곳(4,978㎿), 경기에 390곳(2만5,833㎿)이 들어설 거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부가 전망치를 내놓은 지 다섯 달 만에 예상치의 두 배 가까운 규모가 신청된 셈이다. 서울 신청 건수가 정부 예상보다 소폭 줄었지만 인천은 82곳, 경기는 298곳이 더 늘었다. 다만 강원과 대전‧충청 지역의 IDC 전기사용예정통지도 급증해 전체 IDC 신청 중 수도권의 비율은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산업에 필요한 데이터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며 IDC 전기사용 신청 건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 오픈AI의 챗GPT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면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부터 네이버, KT, 카카오, SK텔레콤 등 국내에서도 초거대 AI 서비스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챗GPT의 경우 1,750억 개의 매개변수(AI가 학습하는 데이터양을 추정하는 단위)를 활용해 개발됐는데 이 변수가 많을수록 더 똑똑한 AI를 구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AI 서비스가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기까지 공부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IDC 전기사용신청도 크게 늘었다.
정부가 IDC 지역 분산을 위해 IDC가 주변 지역 전력 공급에 부담을 줄 정도로 전력을 많이 쓰면 전기 공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역설적으로 수도권 신청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기 용인시·고양시 일대 IDC 전기사용예정통지가 급증했다"며 "3월 말 개정안 적용을 앞두고 '막차'를 타자는 의도로 실제 사용보다 더 많은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비수도권 IDC 고객에게 시설부담금을 할인해 주고 강원과 전북‧전남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투자금 일부를 지원하는 등 IDC를 비수도권에 보내기 위해 다양한 지원 카드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에 IDC를 지을 만한 IT 관련 생태계를 마련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데이터센터 기업 관계자는 "전기요금 아낀다고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은 지방에 갈 기업이 누가 있겠나"라며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데이터센터 수요를 만드는 것부터 해당 지역의 유지 보수 기업 및 대학 등과의 인력 연계 등 생태계가 함께 구축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