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원장이 의무 저버려"... 법원, 한상혁 면직 정당성 인정

입력
2023.06.2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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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직 유지하면 사회적 신뢰 저해"

TV조선 재승인 심사 조작 의혹으로 면직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처분에 불복,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신청 기각과 더불어 정부 측이 내세운 면직 사유 대부분을 인정했다. 사실상 한 전 위원장의 완패. 향후 본안 소송에서 한 전 위원장의 패색이 짙어졌다는 평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 강동혁)는 23일 한 전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면직처분 집행정지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집행정지신청은 집행정지 요건을 갖추지 못해 이유 없다"며 "신청인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할 경우 방통위 심의·의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뿐만 아니라 공무집행의 공정성과 국민 신뢰가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TV조선 재승인 조작 의혹으로 면직

한 전 위원장은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당시 평가점수가 '조건부 재승인'에 해당하도록 조작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2일 불구속 기소됐다. 친분 있는 대학교수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하고, 관련 의혹이 제기된 뒤에는 조작이 없었다는 내용의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한 혐의도 받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임기가 다음달까지인 한 전 위원장을 면직했다. 방통위법과 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면직 당일 한 위원장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며 징계처분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법원 "비위행위 충분히 소명"

한 전 위원장 측은 방통위원장직은 탄핵소추로만 면직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12일 마지막 심문에선 윤 대통령이 제기해 법원에서 인용 결정을 받은 검찰총장 징계 집행정지 신청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정부 측은 "직무상 의무 위반도 정당한 면직 사유"라고 맞섰다.

법원은 한 전 위원장 측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기 종료 전 면직 처분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방통위원장이 탄핵 소추를 통해서만 면직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방통위원장도 방통위원 중 1인에 해당한다"며 "면직사유가 있는 경우 면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한 전 위원장 면직에 사유는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그가 △TV조선 평가점수의 사후 수정 사실을 알고도 구체적 경위를 조사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TV조선에 대한 청문 절차를 강행하는 한편 △유효기간 3년의 조건부 재승인 안건을 상정하도록 지시했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방송의 중립성·공정성을 수호할 중대한 책무를 맡은 방통위원장으로서 그 직무를 방임하고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감독의무를 저버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면직사유는 소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법원 결정에 대해 "한 전 위원장은 방송의 중립성·공정성을 수호할 중대한 책무를 저버렸고, 소속 직원들이 TV조선 점수를 조작하는 것을 사실상 승인했다"며 "법률상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고 법원의 결정이 이를 명확히 확인했다"고 논평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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