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 살인이라 단정 못해"... 연쇄살인 권재찬 '감형' 이유

입력
2023.06.23 14:00
유족 "재판부 머릿속 보고 싶다" 오열

중년 남녀 두 명을 연이어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권재찬이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이규홍)는 23일 강도살인, 사체유기, 특수절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권재찬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단기간에 두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은 충격적인 범행"이라며 "유족도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피해 회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도 범행을 계획했음은 인정되나 나아가 살인까지 계획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재찬은 2021년 12월 4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건물에서 50대 여성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뒤, 그의 체크카드 등으로 현금 수백만 원을 인출한 혐의를 받는다. 시신 유기를 돕기로 했던 40대 남성 공범을 서울 중구 을왕리 인근 야산으로 유인한 뒤 살해한 혐의도 있다.

권재찬은 수사 과정에서 우발적 살해를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그가 첫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미리 알아내고 귀금속까지 빼앗은 점 등을 근거로 금품을 노린 계획범죄라고 판단,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권재찬은 이번 범행 이전에도 살인죄 전과가 있었다. 특수강도와 강간 혐의로 1998년 징역 5년을 선고받아 다음해 출소했으며, 그 이듬해에는 전당포 주인을 둔기로 때려 살해해 징역 15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때문에 1심 재판부는 지난해 6월 사형을 선고하며 "피고인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성실히 살아가지도 않고, 교화나 인간성도 회복할 수 없어 보인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이날 2심 재판부는 권재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우발적 살인"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자백하고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고, 최후진술에서 사형에 불만이 없고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한 점은 반성의 표시로 볼 수 있다"며 "누가 보기에도 사형에 처하는 게 정당할 만큼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권재찬은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살 의욕도 없고 사형이 내게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 유족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재판부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선고 직후 취재진을 만난 유족은 "(권재찬은) 유가족에게 사과해야지 왜 재판부에 사과하느냐"며 "그냥 감형 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요식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사람을 3명이나 죽인 지독한, 지능적인 놈인데 저 놈 말만 믿고 감형했다"고 오열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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