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잘 때 콩팥ㆍ혈관도 쉬어야 한다

입력
2023.06.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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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물론, 식물ㆍ곰팡이ㆍ박테리아 등 생명체가 가진 특징 중 하나가 밤낮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그 방법은 동물ㆍ식물ㆍ미생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생명체는 몸속에 ‘생체 시계’를 갖고 있다고도 한다.

인간 등 많은 동물은 생체 시계에 맞춰 분비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에 의해 잠이 조절된다. 멜라토닌 등 호르몬을 분비하는 능력은 유전자(PER, TIM 등)에 새겨져 있다. 이는 햇볕의 영향도 받는다.

잠의 가장 큰 의미는 꿈을 꾸는 등 뇌 휴식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잠자는 동안 몸에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일들이 일어난다. 잠자는 동안 체온이 떨어지고, 혈압도 낮아진다. 심장박동도 약간 느려진다.

콩팥 기능도 변한다. 콩팥이 낮과 똑같이 작동하면 밤에 잠을 자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수시로 잠을 깨야 할 것이다.

코티졸 등 스트레스 호르몬도 잠에 관여한다. 낮에 활동하는 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던 코티졸은 잠들기 전에는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눈이 초롱초롱하던 각성 상태가 서서히 종료되고 잠에 빠져들도록 한다. 즉, 코티졸과 멜라토닌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침에 일어나기 직전 코티졸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은 서서히 올라간다. 잠에서 깨면 벌떡 일어나 활동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이처럼 밤과 낮을 구별하고, 잠을 자는 능력은 지구에 생명이 출현한 지 수십억 년 이상 진행된 오랜 진화의 산물이다.

그런데 현대 문명이 인간의 잠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전기가 발명된 뒤 밤늦게까지 깨어 일할 수 있게 됐다. 현대사회는 야근으로 생산성을 높인다. 그뿐 아니라 숱한 오락과 즐거움을 위해 인간은 밤늦게까지 깨어 있다.

대륙을 오가는 항공기가 개발된 뒤에는 시차에 적응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세계 곳곳으로 실어 나른다.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할 때는 2~3주 정도 시차 적응 기간이 필요한데, 적응하기도 전에 다시 이동하는 사람도 많다. 밤이 얼마나 밝은지를 문명의 척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밤과 낮의 경계가 허물어질수록 인간의 건강은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로마의 택시 기사들이 왜 만성콩팥병이나 신부전의 발병률이 높은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다.

연구팀은 택시 기사들의 고혈압 유병률이 높은 것에 주목했다. 원래 낮에만 일하던 기사들이 밤에 더 많은 택시비를 지불하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밤늦게까지 일하게 된 것을 확인됐다. 야근 증가가 고혈압 위험을 높였고, 결국 고혈압에 의한 만성콩팥병, 신부전 증가로 이어졌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부득이하게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밤과 낮을 거꾸로 살거나, 불규칙하게 잠을 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수면 부족,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제때 잠을 자지 않으면 뇌ㆍ혈관ㆍ콩팥ㆍ심장ㆍ췌장 등 수많은 기관과 장기도 쉬지 못한다.

밤낮이 뒤바뀐 현대사회에서는 생체 시계가 심각한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는지 모른다. 고혈압ㆍ당뇨병ㆍ만성콩팥병 등 만성질환 증가의 원인이 일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