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어요. 어머님이 돌아가셨거든요. 근데 가고 싶지 않네요. 안 가려고요. 안 갈 생각입니다."
그의 얼굴이 어두웠다. 얼굴도 푸석했다.
"원망스러워요. 왜 그렇게 나는 챙겨주지 않았을까. 왜 동생들만 챙겼을까. 제가 동생들 뒤치다꺼리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아세요? 당장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탈탈 털어 갖다 바치면 그걸로 끝이에요. 단 한 번도 애썼다,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동생들, 나보다 더 잘들 하고 살아요. 저 사는 거 보셔서 아시잖아요? 그런데 고급 차 타고 다니고 여행 다니고. 그래도 빌려 간 돈은 갚지 않아요. 어머니가 우리 마누라 구박은 또 얼마나 했게요. 한번은 마누라 일기장 보면서 내가 울었다니까요. 아예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셨으니 가야 한다고요? 사람들은 쉽게들 말합니다. 천륜을 저버리면 안 된다고. 전 안 갈 거예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그도 응당 가야 한다고, 가서 어머니의 마지막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형제들과 마주하기에는 화가 너무 컸다. 동생들을 감싸고 돈 어머니에 대한 화도 컸다. 오래 보지 않고 사는 동안 묻어뒀던 상처들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까지 말을 보탤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의 내뱉는 말을 머리를 주억거리며 들을 뿐.
그가 우리 책방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도 벌써 6년째. 책방 문을 막 열었을 때 근처 물류창고에서 관리 업무를 맡아서 했던 그가 무슨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한다며 책방을 찾아왔다. 육십 평생 몸으로 살아온 그는 일단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어쩌다 보면 꾸벅꾸벅 졸거나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그래도 그는 한동안 매일 출근 도장을 찍듯 책방 한쪽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그동안 했던 일과 연계됐다고 해도 그 나이에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는 모습이 내겐 남달라 보였다.
"덕분에 합격했습니다!"
얼마간 보이지 않던 그가 찾아와 웃으며 말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종일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는 게 그가 말한 '덕분'이었다. 나는 매일 커피 한 잔씩 팔아준 고마운 손님이라고, 축하한다고 답했다. 그가 공부하는 동안 종일 책방에 그와 나밖에 없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시 회사에 나가게 된 그는 종종 들르면서 나보다 남편과 더 가까워졌다. 농사일이나 정원 가꾸는 일, 전기 다루는 일 같은 시골 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경험이 많은 그로부터 우리는 이런저런 지혜를 얻었다.
"나는 책만 펼치면 잠이 와요. 책이 수면제라니까요. 제가 비록 책을 읽지는 않지만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좋아요."
그가 곧잘 하는 말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책이 주는 위로는 반드시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 역시 책방의 책들을 둘러보며 표지와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때가 많으니까.
소나무 아래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멀리에서 바라보았다. 어머니를 보러 가든 가지 않든 그것은 그의 몫. 문득 그의 애도는 이미 오래전 어머니와 결별한 순간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좀처럼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나는 가만 그의 온전한 애도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