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을 마친 참전용사 후손들을 무대 뒤에서 만나보니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19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봉 홍익대 패션대학원 석좌교수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6일 현충일에 열린 의정부시청소년 재단 주최 ‘유엔 군복 패션쇼(UNiform Runway)’는 그에게 뿌듯함을 안긴 행사였다. 이 교수는 이번 패션쇼에 재능기부를 했다. 패션 전공 학생 19명과 3개월간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군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상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패션쇼 당일엔 참전용사 후손 3명이 직접 모델로 나섰다. 그는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한국이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나라라는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1950년 6ㆍ25 전쟁이 발발하고, 3년 뒤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이름도 생소한 동양의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친 이들이 있다. 유엔군 참전용사들이다. 22개국에서 195만 명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피를 흘렸다.
그러나 적잖은 희생을 감수한 이들을 위한 한국 정부 차원의 지원 사업은 미흡한 편이다. 국가보훈부는 1975년부터 저소득 국가의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전적지 방문과 감사 만찬을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3만3,726명이 한국을 밟았다. 참전용사 후손 장학사업도 2010년부터 이어져 작년 한 해 823명이 혜택을 받았다. 초청, 장학사업 모두 전체 참전용사 숫자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참전용사들을 예우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된 것도 불과 3년 전(2020년 9월) ‘유엔참전용사의 명예선양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다.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보훈 공백’을 메워온 건 이상봉 교수 같은 ‘민간외교관’들이다. 이 교수는 “12년 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참전용사에게 직접 디자인한 군복을 선물한 적 있는데 펑펑 우는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며 “보훈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국위 선양을 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라미(본명 현효제)’도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우리 국민 중 한 명이다. 2017년부터 6년간 1,500명 넘는 참전용사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군복 입은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촬영한 사진은 액자에 담아 선물한다. 대부분 비용은 작가 사비와 개인 후원으로 충당한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역시 17년 동안 매년 6월이면 참전용사와 유족들을 한국에 초청해 현충원, 판문점 등을 방문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지금까지 참전용사 6,000명이 다녀갔다. 소 목사는 “전쟁기념관에 적힌 전우의 이름을 만지며 눈물 흘리는 분을 보면 이 일을 중단해선 안 되겠다는 소명의식마저 생긴다”고 힘줘 말했다.
민간 외교관들은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입을 모은다. 노병들이 거의 90세를 넘긴 나이라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소 목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 참전용사가 줄어 한국 정부가 더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