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의 불완전판매·횡령 '시스템 실패'에 CEO 책임 묻는다

입력
2023.06.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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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별 책무 정한 '책무구조도' 도입
대형 금융사고 발생시 책임 명확화
CEO도 '시스템적 실패'에 책임져야

대규모 원금손실 피해를 부른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고나 대규모 횡령 사고가 금융권에서 재발할 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그간 형식적으로 운영된 금융회사 내부통제 시스템에서 경영진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도록 개선, 대형 금융사고 때마다 반복됐던 '책임 회피' 관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는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권 협회장 간담회에서 금융사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 도입 등을 담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이에 따른 대규모 피해 발생, 직원 횡령 등 금융권에서 잇따라 대형 사고가 발생하자 10개월여에 걸쳐 방안을 마련하고 이날 발표했다.



임원 책임 명확히 배분한 책무구조도 도입

개선 방안의 핵심은 책무구조도 도입이 꼽힌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들의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한 조직도와 같은 문서다. CEO가 작성하고 거짓 작성에 대한 책임도 진다. 임원의 범위는 지배구조법상 CEO, 최고리스크담당자(CRO), 최고고객책임자(CCO) 등 C-레벨에 해당하는 임원이다. 대형은행 기준으로 보통 20~30명 수준이다. 이사회 심의·의결을 거쳐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현재도 내부통제기준이 존재하지만, CEO 등에겐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만 부여할 뿐 '준수' 의무를 두고 있지 않다. 불완전판매, 횡령 등 사고가 발생해도 임직원의 책임 회피가 반복될 수 있던 이유다. 이에 당국은 책무구조도를 통해 금융사 임원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채무구조도에 직책별로 배분된 책무를 맡은 임원에겐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부여하기로 했다. 자신의 책임 범위 안에서 내부통제기준이 적절한지, 그 기준이 실제 작동하고 있는지, 임직원이 기준을 준수하는지 등을 관리해야 하는 의무다. 임원 신규 선임이나 직책 변경 시 해당 임원의 전문성과 업무경험 등 자격요건을 갖췄는지도 확인하도록 할 방침이다. 책무구조도에 담길 구체적 책무와 그 범위는 향후 개정될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시행령에 담길 예정이다.

CEO 책임 강화하고, 이사회 역할도 명확히

개선되는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의 취지는 금융사에서 대형 사고 발생 시 그 책임은 CEO에게 있고 그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CEO의 내부통제 총괄 관리의무를 명확히 했다.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할 의무를 부과하고 조직적이거나 장기간·반복적 혹은 광범위한 문제(시스템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했다. 예컨대 불완전판매의 경우 상품 선정과 디자인, 판매 절차 등 전반의 과정에서 내부통제 실패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CEO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금융당국은 설명했다. 이형주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만일 여러 부서에 걸쳐 내부통제 실패가 발생했다면, 이는 개별 임원의 문제가 아니라 단기성과에만 치중하는 조직문화의 문제"라며 "이런 경우엔 대표도 책임을 지는 게 맞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거수기', '방패막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이사회의 내부통제 감시 역할도 명확해진다. 개선안에 따라 이사회는 회사의 내부통제체계와 운영 전반의 적정성을 점검해야 한다. 이사회 내 소위원회 중 하나로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하고 관련 전략과 기업문화 정착방안 등도 심의·의결해야 한다.

금융권 "취지 동감하나 CEO 교체 빌미 될 수도"

금융위는 연내 내부통제 개선안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되면 1단계로 1년의 경과기간을 거쳐 은행·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우선 시행한다. 2단계로 대형 금융투자회사 및 종합금융투자회사, 대형 보험사 등에 6개월 이후 적용한다.

금융권에서는 내부통제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자칫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임원들의 책임관계가 명확해진다는 점을 '양날의 검'에 비유했다. "사건·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경영진이 위험 부담(리스크)이 큰 사업은 회피하는 경향이 생길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문구가 너무 디테일하면 포지티브 규제(나열한 것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로, 모호하면 최고경영자(CEO) 물갈이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와 관련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번 제도 개선은 제재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관련 의무를 충실히 한 임원은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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