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디지털 질서 규범 제정을 위한 국제기구의 설치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야기할 불법과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규제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뉴욕대(NYU) 디지털 비전 포럼과 유엔 연설에서 디지털 규범 정립을 강조한 것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소르본 대학에서 열린 ‘파리 디지털 비전 포럼’에 참석해 ‘새로운 디지털 질서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우선 챗GPT 등 AI 기술이 언어 이해 능력을 기반으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온 창작 능력에까지 이르렀다는 점, 이에 인간과 AI의 합작 성과가 가능해진 시대라는 점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그 독창성의 원천과 법적 권리 관계에 관해 엄청난 혼란을 빚어내고 있다”며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사회적 리스크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디지털은 인간의 자유를 확대시키는 데 기여해야 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장 먼저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AI 관련 법 제도가 통과되고, 한국 역시 디지털 권리 장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 윤 대통령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 △후생 △디지털 자산에 대한 권리 등에 대한 보장을 위해서라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디지털 질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기구에 대해 윤 대통령은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 의미가 있으며 국제적 합의 도출을 위해서는 유엔 산하기구가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제안은 각국 차원을 넘어선 글로벌 AI 윤리규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은 이미 AI 권리장전 청사진을 발표했고, 유럽연합(EU) 의회도 최근 AI 규제법안을 의결했다. 영국과 유엔은 AI 규제기구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한 상태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브리핑에서 “지난해 9월 ‘NYU 디지털 비전 포럼’과 유엔 연설에서 새로운 디지털 질서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글로벌 공론장을 통한 디지털 규범의 정립을 촉구하는 ‘뉴욕 이니셔티브’를 제시한 바 있고 이를 B20 서밋, 두바이 미래포럼, 다보스 포럼, 하버드대 연설로 이어지면서 점차 구체화됐다”고 말했다. 최 수석은 “기술·경제적 측면의 논의를 넘어 디지털과 인문·법·철학적 관점까지 고려하자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제안하는 파리 이니셔티브는 현재 일부에서 논의를 시작한 AI에 국한하지 않고, 데이터와 컴퓨터 역량을 포함한 디지털의 모든 영역을 망라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에는 아시아계 최초의 프랑스 장관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파리1대학 교수, AI 윤리 분야를 연구하는 라자 샤틸라 소르본대 교수, 프랑스 과학철학회 회장을 역임한 다니엘 앤들러 소르본대 명예교수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