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사교육과의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교육부가 어제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을 내놓았다. 초중고 전반을 아우르는 공교육 대책이 발표된 건 2009년 이후 14년 만이라고 한다. 사교육 팽창의 가장 큰 원인이 공교육 약화에 있다는 점에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듯 내용은 방대했지만 알맹이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기존 정책을 열거한 수준이었고, 정작 핵심 정책은 오히려 사교육 경감 방침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교학점제는 예정대로 2025학년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올해 중2 학생부터는 고교 진학 시 자신의 적성과 취향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직접 골라 들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1 공통과목은 절대평가(성취평가)가 아닌 상대평가(9등급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학교 현장의 혼란을 막고 최소한의 내신 변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학년은 상대평가, 2~3학년은 절대평가를 하게 되면 결과는 너무 뻔하다. 대입 내신에서 고1 상대평가 결과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기형적인 구조를 낳을 것이다. 결국 고1 학생들이 극단적 사교육 경쟁에 노출되고 여기서 밀려난 학생들은 2학년부터 수능에 매달리는 파행이 일지 않겠는가.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 양성을 꾀한다는 고교학점제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의 존치도 공식 선언했다. 학교 교육 다양화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지만, 이들 학교가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것은 여러 통계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자사고 지망 학생의 월평균 1인당 사교육비(61만4,000원)는 일반고 지망 학생(36만1,000원)의 2배에 육박한다. 후기 선발, 정원 20% 지역인재 선발 등의 보완책을 담고 있지만 구색 갖추기 수준이다. 특수목적고를 존치시키겠다면 좀 더 강력한 사교육 억제 방안이 필요한 것 아닌가. 교육당국이 이 정도의 공교육 강화 방안을 내놓고 이제 사교육만 잡으면 된다고 여긴다면 지나치게 안일한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