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국회의원 정수 10%(30명) 축소를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의원정수 축소'를 내세워 내년 총선에서 '정치 개혁' 이미지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서조차 "가장 만만한 비례대표를 볼모로 삼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전문가와 야당에서 '비례대표 확대' 견해가 커지는 것과도 정반대의 주장이다.
김 대표는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의원정수 감축 문제는 국민들 대다수가 열망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회의원 숫자를 10% 감축하고 더 열심히 생산적인 의정활동을 한다면 우리 국회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밝힌 '국회의원 30명 축소' 주장을 재차 언급한 것이다. 이어 "방향성에 대해 (당내) 다른 의견을 가진 분이 지금까지 없다"며 당론 추진 의사를 밝혔다.
친윤석열계 인사들은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철규 사무총장은 SBS 라디오에서 "(의원정수 감축 등) 정치 개혁방안 3개 과제는 김 대표의 개인 생각도 우리 당만의 생각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들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비례대표인 이용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당론으로 가야 된다고 본다"고 거들었고, 김병민 최고위원은 "지도부가 전체적으로 김 대표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고 힘을 실었다.
김 대표는 지난 4월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는 국회 전원위원회를 하루 앞두고 '의원정수 30명 축소' 제안을 꺼낸 바 있다. 자연적인 인구 감소에 따라 줄일 수 있는 지역구 7석에다 비례대표 23석을 없애자는 주장이었다. 국회 선거제 개편 논의 과정에서 야당과 전문가들이 비례대표 확대를 통한 의원정수 확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 대표의 '의원정수 축소' 드라이브는 여권의 지지율 정체 속에 '정치 혐오' 정서에 기대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활용해 의원 수를 줄이자고 주장하면서 '정치 개혁' 이미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선거제 개편 논의를 저지하려는 측면도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선 더불어민주당의 비협조로 의원정수 감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를 내년 총선에 득점 포인트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사무총장이 SBS 라디오에서 "(의원정수 축소 등이) 좌절된다면 이걸 이룰 수 있도록 국민들께서 힘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서조차 비례대표 중심의 의원정수 감축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은 통화에서 "당론으로 정해지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외교안보, 경제 분야 등에서 전문성 있는 역할을 해주는 비례대표들이 있고,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사업에 몰두하다 보면 국회 업무에 충실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비례의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의원정수 축소)를 하면서 가장 만만한 비례대표를 볼모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건폭, 사교육과 마찬가지로 일부 집단을 악마화하는 것"이란 강도 높은 비판도 있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비례대표인 김예지 의원이 최근 대정부질문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발언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기립박수를 받은 사례를 언급했다.
김 대표의 주장이 당내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을지는 불투명하다. 농어촌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 많은 국민의힘 특성상, 지방의석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계속돼 왔다. 지난 4월 선거제 개편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김형동 의원은 "지방 대표성이 적어지니 지역 발전이 안 되고, 인구 유입이 더 안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했고, 이양수 의원도 "제 지역구는 수원시와 비교해 면적이 25배나 넓지만 국회의원 수는 5분의 1이다. 1인당 면적은 100배 차이가 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