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의도에선 여야 양당 모두 2016년 4월 13일 치러진 20대 총선 상황을 복기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박근혜 대통령 당시 광범위한 민심이반이 표출되면서 새누리당 참패로 끝난 이때를 반면교사 삼는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표-김종인 비대위’ 카드로 승부를 건 뒤 예상과 달리 수도권 대약진으로 새누리당과 대등한 위치에서 제1당이 된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경우다. 당시 호남 민심은 ‘친노 패권주의’로 내몰린 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안철수의 제3당을 밀어주는 이변까지 속출했다. 여야는 왜 하필 7년 전 총선을 연구 중일까. 그 이유와 속내를 들여다봤다.
2016년 4·13 민심은 매섭고도 사나웠다. 정권에 대한 선거혁명 수준의 심판이 이뤄졌다. 집권세력은 16년 만의 충격적인 여소야대 태풍에 빨려 들어갔다. 최대 180석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1여2야’의 유리한 구도로 싸우고도 122석, 제2당에 그쳤다. 박 대통령은 선거 1년 전부터 국민을 향해 정치권 전체를 심판하고 국회를 완전히 바꿔 달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입만 열면 국회를 윽박지르며 일 안 하는 야당 심판을 외쳤지만 국민은 거꾸로 국정의 무한책임을 진 집권당의 반성과 쇄신을 요구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비영남권 친윤계 의원은 21일 본보 통화에서 “20대 총선 때 여권이 간과한 상황과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이 비슷하다”며 “민심은 독선적 리더십을 싫어하는데 당 지도부는 쉽게 당선되는 영남권이 많아서인지 위험성을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 의원은 “고압적 느낌을 주는 대통령 리더십과 무기력하게 추종하는 당의 태도가 함께 바뀌어야 수도권 표심을 공략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다른 비영남권 의원은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애초 당을 장악한 상태였지만 윤 대통령은 자기세력이 없이 이제 착근해 가는 과정”이라며 “윤 대통령 주변이 2016년 사례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데다 당시 공천을 주도한 인물들은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아니라 자기정치를 했고, 지금 우리 당은 ‘친박공천 폐해’ 학습효과를 명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보이는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도 하반기 인사 요인 등을 통해 변화를 줄 계획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취약한 국정지지도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보다 높다는 설명은 주목할 만하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그때의 박근혜와 윤 대통령이 비교될 수는 있다”면서도 “총선 300일 전인 2015년 6월 셋째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박 대통령이 33%로 지금 윤 대통령(35%·16일 한국갤럽)보다 낮았다”며 “다른 점은 당시 새누리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더블스코어로 이기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지금 정도만 유지해도 결정적 문제는 없다는 얘기다. 신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선거가 임박한 3월 셋째 주 정도에 겨우 40%에 올라섰다”며 “그것보다 관건은 계파갈등이 심해지면 총선 승리가 힘들어진다. 윤 대통령이 당에 대한 장악력을 더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6년의 교훈은 ‘파벌이 일어나면 선거는 끝’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친윤계 의원은 국정지지도에 대해 “우리가 총선을 뛰려면 최소 쥐어짜더라도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40%나 45%는 되어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검사집단 대거 공천설’을 우려하는 여당 주변에선 15대 총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과감한 인재발굴이 모델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내부 반대파까지 품어 신선한 얼굴들로 수도권에 전진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윤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YS는 자신과 갈등을 빚고 감사원장직에서 사퇴했던 이회창을 기용했지만 윤 대통령이 유승민, 이준석, 천하람을 다 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파격이 이뤄진다면 득표에 반전효과가 뚜렷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처한 상황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과 흡사하다. 문재인 당대표 등장 두 달 만에 치른 4·29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 지역구 4곳 모두 전패했다. 다음 해 20대 총선을 앞둔 문재인 리더십은 위기에 처했고, ‘친노 패권’을 공격해 온 비문재인계는 일제히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문 대표는 이때 내분수습을 위해 ‘김상곤 혁신위’를 띄웠고, 사무총장제를 폐지하는 등 과감한 수술에 나섰지만 궁극적으론 안철수 등 비주류가 탈당을 결행하기에 이른다.
’이재명 민주당’의 쇄신을 이끌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지난 20일 닻을 올리며 첫 의제로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코인) 논란을 정조준키로 했다. 그러나 혁신위원들이 친명 일색으로 꾸려졌다며 비명계를 중심으로 ‘친위쿠데타’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나오는 실정이다. 당 주류의 속내는 어떨까. 수도권의 한 친명계 의원은 “이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결단한 데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며 “실제로 알아보니 이 대표가 만에 하나 구속되는 것도 각오하고 있더라”라고 높게 평가했다. 친명계는 혁신위의 중요 과제로 대의원제 폐지를 꼽고 있다. 당원권리 강조는 비명계가 절대 반대를 외치는 부분이다.
혁신위를 대하는 온도는 양측 간 차이가 있다. 친명계 의원은 “솔직히 지금은 혁신위원장보다 대여 투쟁위원장이 필요한 때”라며 “혁신논쟁이 너무 일찍 불붙으면 실패한다. 9월 넘어서면 공천관련 의정활동 평가부터 여러 당무일정이 시작되는데 자칫 경선룰이나 대의원제를 손대면서 갈등이 조기에 점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계파갈등이 표면화해 당 지지율은 더 추락할 것이란 걱정이다.
반면 비명계에선 ‘혁신위 무용론’이 뿌리 깊다. 강성 팬덤 폐해를 어느 선에서 실효적 방안을 내놓을지도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중이다. 궁극적으론 이 대표 체제로 총선 승리가 힘들다는 시각에서 비대위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크다. 범친명계로 분류되는 한 수도권 의원은 익명을 강조하며 “이 대표가 던진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이 향후 비대위로 안 가기 위한 카드로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1년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이낙연 전 대표의 오는 24일 귀국이 혁신위 성공 여부와 함께 비명계 결집으로 이어질지도 관건이다. 신 교수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민주당 분당 가능성에 대해 “좀 이른 얘기다. 계파갈등 자체보다 그 당이 총선에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에 분당 여부가 달려 있다”며 “지역 기반을 가진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낙연 전 대표가 호남맹주 입지까지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또 돈 문제가 중요한데 남는 쪽은 자산·부채를 승계하지만 나간 쪽은 광야에 빈털터리로 서게 돼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가을부터는 여야가 개혁·혁신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양측 공히 내다봤다. 비윤계로 분류되던 한 국민의힘 의원은 “하반기 정국은 혁신위를 띄운 민주당 상황에 달려 있다”며 “하나라도 손에 잡히는 가시적 결실을 거두면 우리 쪽도 김기현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기 힘들다는 인식이 폭발해 민주당보다 충격적인 쇄신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한 이재명 대표에 대해 당 공식입장과 달리 “국민에게 신선함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몸부림은 의미가 커지고 우리가 수세에 몰릴 수도 있다”며 “저쪽은 워낙 신장개업 형태로 국민을 속이는 데 능한 데다 ‘이재명 사법리스크’도 오래가니까 국민도 둔감해져 한쪽으로 몰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민주당 수도권 출신 의원은 “윤 대통령이 현재대로 독선적 리더십을 거두지 않으면 우리가 유리하다”면서 “여야 기득권 포기 경쟁이 현실화하면 이재명 대표가 실제 물러설지, ‘문재인-김종인’ 때처럼 국민 보기에 최소한 내려놓기 효과를 볼 수 있을지에 승부가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