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뒤늦게 걸려 고생을 했다. 간호사들도 확진자가 많아 진료도 못 하고 병원 운영도 쉽지 않았다. 병용금기약물 때문에 화이자의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 처방은 받지 못했다. 별다른 치료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팍스로비드 재고 처리 때문에 새로운 치료제가 나왔는데도 긴급승인되지 못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의사 입장에서도 궁금한 것이 많았다.
정부는 올해 초 팍스로비드 유효기간을 12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했다. 덕분에 올해 2월 1명분이 60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팍스로비드의 대량 폐기 위기를 넘겼으나 다시 잔여분 유효기간 마감시한(8월)이 돌아오고 있다. 그래서 팍스로비드 유효기간을 다시 연장할지 혹은 폐기할지 등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팍스로비드 96만 명분 중 38만 명분(지난해 10월 기준)가량이 아직 창고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네 슈퍼에서 파는 각종 식품류라 할지라도 유효기간이 하루라도 지나면 먹기를 꺼려 한다. 더욱이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약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치료제의 유효기간을 6개월씩이나 연장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약품을 폐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치료제는 일반 식료품보다 훨씬 까다롭게 안전성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잘 아는 감염병 전문가는 "의약품의 유효기간은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 원칙이다. 식품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불가피한 경우 유효기간을 늘릴 수 있겠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물며 대안이 있을 경우에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만약 사고가 나면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국내 코로나19 백신 잔여량은 4,305만7,000회분이며 이 중 3,500만 회분의 유효기간이 9월 말 종료된다. 어림잡아도 수천억 원이 날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팍스로비드 유효기간을 무리하게 연장하는 등 안간힘을 쓰는 것은 수요 예측 실패로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것일 거다. 정부가 국고 낭비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정처리 행위다. 하지만 이로 인해 신약 긴급승인에 방해가 된다면 더 큰 문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보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