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처음 치러진 건 30년 전인 1993년 8월이다. 도입 취지는 '대학에서 공부를 할 능력을 갖췄는지'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이전까지의 대입 시험이었던 학력고사는 단편적 교과 지식만을 측정해 교과서를 달달 외워 '찍기 능력'을 키운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교육으로는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울 수 없다는 반성도 나왔다.
그래서 초창기 수능은 한국 교육의 병폐로 지목된 주입식 암기 교육의 성과 대신 학생들의 사고력과 논리력을 평가하도록 설계됐다. 자료 해석이나 원리 응용, 논리적 사실 분석과 판단 능력 등이 강조됐다. 덕분에 당시 수능은 난이도 조절 실패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고교 교육 정상화에 일부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입 취지대로 정착됐다면 수능은 한국 교육의 '구원자'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국어 영역에선 지문으로 제시된 문학 작품의 저자도 맞히지 못하는 문제가 출제되고, 과학탐구 영역의 생명과학 문제는 세계적 석학으로 평가받는 미국 유명 대학 교수가 "고교 시험에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출제된다는 게 놀랍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대학 수준의 과학과 경제 지식이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 심지어 200자 원고지 13장 분량인 2,600자의 지문을 읽고 풀어야 하는 문제도 출제돼 수험생들을 괴롭혔다.
초창기 수능을 설계한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제도가 변질됐고, 변질된 수능이 한국 교육을 망쳤다고 지적했다. 수능은 대학 입학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었는데, 대학들이 학생 선발을 위한 '점수 줄세우기'를 하면서 학력고사와 다를 바 없어졌다는 것이다.
대학은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학생의 역량보다 수치화된 점수와 등수를 중시했고, 학생들은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이면서, 탈락자를 가려내기 위한 '배배 꼬인' 고난도 킬러문항이 등장했다. 수능은 빠른 시간 안에 정답을 골라내는 요령을 익혀야 하는 시험이 됐고, 더 많은 정답을 찾기 위해 암기식 교육이 필요하게 됐다.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들여 학생들은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어려운 내용을 학습하는데, 정작 대학들은 신입생들의 기초 학습 역량이 떨어진다고 하소연한다. 수능 점수 따기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면서 진짜 대학 교육에 필요한 과목들을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들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고교 수준의 기초과학 과목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다.
이런 상황이라면 수능을 계속 유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수능으로 대표되는 대입 시스템도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마침 정부도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준비 중이다.
사교육비 절감, 교육격차 해소, 공교육 정상화 등 많은 요소를 고려하겠지만, 중심에 둬야 할 것은 교육의 본질이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며,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이 배운 것은 어떤 틀로 평가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학생의 다양한 개성과 능력을 평가하는 대신 손쉬운 '점수 줄세우기'의 유혹에 굴복한다면 우리 교육은 계속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