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성냥팔이 소녀의 새로운 소원

입력
2023.06.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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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캐롤(글)·로렌 차일드(그림) '성냥팔이 소녀의 반격'

가족에게 학대당하고 혹독한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 성냥팔이 소녀의 비참한 죽음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 내야 하는가.

신작 '성냥팔이 소녀의 반격'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동화 '성냥팔이 소녀'(1845)에 대한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영국 작가 엠마 캐롤은 새로운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위해 1888년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성냥 공장 노동자 파업을 소재로 삼았다. 이는 유독성 물질 백린을 사용한 성냥 공장에서 치아와 턱이 녹는 '인중독성 괴저' 질병에 시달리며 일한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한 노동운동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다. 작가는 동화의 환상성에 역사와 철학을 적절히 녹여냈다.

화자인 '브리디'의 세 가족은 성냥으로 먹고산다. 엄마는 성냥 공장에서 일하고 남동생은 성냥갑을 조립하고 자신은 성냥을 판다. 어려운 환경에도 브리디는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하기보다는 자신의 판매 능력을 자부하는 당찬 인물이다. 그런 브리디에게 12월 31일, 성냥의 마법이 일어난다. 부자로 살아 보고 싶다는 소원을 빈 그는 대저택에서 호화로운 저녁을 먹게 된다.

그리고 남은 성냥개비 두 개. 두 번의 소원 기회를 어디에 쓸까 고민하던 브리디는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도 일한 만큼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길" 기원한다. 그 소원을 계기로, 이웃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용기 있는 소녀의 새로운 동화가 펼쳐진다.

그림은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와 '메리 포핀스' 등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로렌 차일드가 맡았다. 흑백과 붉은색으로만 구성했다. 불타는 듯 붉은색은 브리디 머리와 성냥불, 노동자들의 열정적 이미지 등에 쓰이며 서사의 강렬함을 더한다.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