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망령으로 안개 낀 경북궁, 담당 공무원이 있다?

입력
2023.06.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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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 '기이현상청 사건일지'

편집자주

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멀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SF 평론가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해 온 심완선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기이현상청 사건일지'의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본 연작 소설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흔한 표현이고 맞는 말이다. 한국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기이현상청’이라는 부처가 존재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는 능청스럽게도 말을 잇는다. “기이현상청은 단순 자문 이상의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았으며, 금품이나 기타 유형‧무형의 대가가 오간 바 또한 없다"는 내용이다.

정부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본들 기이현상청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모론에 소질이 있다면 이 말의 함의를 읽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없다는 말은 비공식적으로는 있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침 기이현상청의 업무도 성격이 비슷하다. 기이한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거나, 국민에게 ‘그런 이상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안심시키는 것이 그곳 일이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의 망령으로 인해 경복궁에 정체불명의 안개가 깔리고 부상자가 속출했을 때는 “기상 변화에 따른 일시적 스모그 현상”이라는 해명이 내걸렸다. 이어서 궁궐 관람 중지, 직원 대피, 근방에 사람이 접근하지 않도록 대기오염 경보 발령, 도로 통제 등의 추가 조치가 시행되었다. 기이현상청이 재빨리 관련 부처에 연락을 돌려 협조를 요청한 덕분이었다.

이렇듯 소설은 기이한 현상을 공무원의 일거리로 전환한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초자연적 규모의 사건들이 그럭저럭 일상적인 사건·사고로 보이는 착시가 일어난다. 실제로 조금 하찮기도 하다. '주문하신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 에피소드는 동네 슈퍼에 남아 있던 오래된 막대 아이스크림에서 시작한다.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는 잘못 생산된 편의점 삼각김밥을 회수하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몇천 년 묵은 악령이 담긴 유물이 발견되거나, 인류를 멸망시킬 잠재력을 품은 괴생물체가 나타나곤 하는데, 모두 담당 공무원이 처리할 업무로 수렴한다. 담당자는 때때로 주말이나 휴일에 시간 외 근무로 출동한다. 기이 현상이 업무시간을 따져가며 발생하진 않기 때문이다.

소설은 기이함을 그럴듯하게,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빼어나다. 생활감 덕택에 웃기고 짠한 순간이 있다. 공포영화의 피가 물엿과 식용색소라는 사실을, 피범벅인 장면일수록 현장에는 달콤한 냄새가 가득해 고역이었으리라는 점을 자각하면 괜히 웃음이 나는 원리와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뛰는 기이현상청 및 지정기이단체 인물들은 특이한 구석은 있더라도 나름의 희로애락을 지닌 고만고만한 존재다. 먹고살기와 자아실현, 책임감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다움을 지녔다.

그런데 특이함과 평범함의 이런 균형은 픽션이 소수자를 다룰 때 갖출 태도이기도 하다. 작중 ‘죽었다 살아났다’든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특성은 ‘연애 취향이 이상하다’든가 ‘조선족 자녀’ 등의 특성과 뒤섞인다. 그리고 참으로 평범하게도, 이들은 ‘믿는다’나 ‘파이팅’ 한마디에 힘을 얻는다. 비현실의 과육 안에 단단히 자리한 현실의 알맹이다.

심완선 SF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