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노쇼' 변협 징계위, 유족에 "왜 이렇게 화가 났나, 예의 지켜달라"

입력
2023.06.20 14:00
변협, 19일 권경애 변호사에 자격정지 1년 
징계위 참석했던 피해 유족 이기철씨  
"징계위원, 권 변호사가 경제력 잃을까 걱정"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자신이 맡은 사건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패소한 권경애(58) 변호사에 정직 1년의 징계를 결정한 가운데 피해 유족이 변협 징계위 회의가 '제식구 감싸기' 식으로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고(故) 박주원양의 어머니 이기철씨는 2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변협 징계 결과에 대해 "굉장히 참담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주원양은 학교폭력을 당하다 열여섯 살이던 2015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권 변호사는 이씨가 가해자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법률 대리를 맡았으나 항소심 재판에 3회 연속 불출석해 지난해 11월 소송에서 패소한 뒤, 이씨에게 5개월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아 유족은 대법원 판단도 받아보지 못했다.

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가 변호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패소해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부담하게 된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이 일자 뒤늦게 징계절차에 착수한 변협은 19일 권 변호사에 대한 징계위를 열고 변호사 자격정지 1년을 의결했다. 현행법상 권 변호사가 받을 수 있는 징계 종류는 △제명 △3년 이하 정직 △3,000만 원 이하 과태료 △견책 등 4가지다.

변협 징계위에 참석했던 이씨는 이같은 결론에 대해 회의 자체가 '제식구 감싸기' 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징계위 회의에서 조사위원들이 유사사건과의 형평성 문제와 함께 권 변호사가 경제력을 잃을 것을 걱정하는 발언들을 했다"며 "한 징계위원은 권 변호사가 '어차피 질 재판'이라며 말렸는데도 유족이 항소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냐는 질문을 해오기까지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씨가 이러한 발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한 징계위원은 이씨에게 "왜 이렇게 화가 났냐" "예의를 지켜달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씨는 "녹음할지도 모르니까 직원에게 휴대폰을 뺏으라고 하는 등 굉장히 고압적인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반면 권 변호사는 이날 징계위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다만 변협에 낸 경위서에 "한 번은 쓰러져서, 한 번은 날짜를 잘못 메모해서 재판에 출석하지 못했다. 또 다른 한 번은 왜 못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자신의 불출석 사유를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변호사에 대한 변협 징계위가 열린 것은 주원양의 여덟 번째 기일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이씨는 "인간의 도리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딸을 잃은 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대답만 들으며 온갖 곳에서 짓밟혀왔다"며 "내일(21)이 딸의 기일인데, 도저히 어떻게 보러 가야 할지 너무 참담해서 주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징계위 종료 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는 "며칠만이라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오늘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일해야 한다"며 "엄마가 무슨 낯으로 주원이를 보러 갈 수 있겠나, 나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나"라고 적기도 했다.

원다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