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19일 베이징에서 회동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이 회담하며 약속한 '외교를 통한 긴장 완화' 기조를 재확인했다.
한때 "시 주석이 블링컨 장관과의 만남을 거부해 미국에 경고를 보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긴장이 흘렀지만, 양측 간 논의가 '미중 관계 정상화 노력'에 방점을 찍으며 악화일로였던 미중 관계에 숨통을 틔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중국을 방문한 블링컨 장관은 19일 오후 4시 30분(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 주석을 예방했다. 시 주석은 미중 정상이 발리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을 이행하기로 했고, 일부 구체적 현안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언급하며 "이는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발리에서 첫 번째 대면 정상회담을 하면서 '고위급 소통 재개를 통한 미중 긴장 관리'에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아울러 시 주석은 "중·미 양국이 올바르게 공존할 수 있느냐에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다"며 양국 관계의 정상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미국도 중국을 존중하고 정당한 권익을 해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시 주석과의 회동 후 기자회견에서 "미중 양국 모두 양국 관계를 안정화할 필요에 동의했으며 고위급 대화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과 만나 대만 및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도발적 행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특별한 역할도 당부했다고 블링컨 장관은 설명했다. 또, 시 주석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에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도 덧붙였다.
미국 국무장관이 방문국 정상을 만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2018년 6월 미 국무장관으로선 마지막으로 중국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장관도 시 주석을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 중국은 미국의 애를 태웠다. 시 주석과 블링컨 장관이 만날 것이라는 미 국무부 발표는 회동을 불과 1시간 앞두고 발표됐다. 블링컨 장관이 다음 방문국인 영국으로의 출국을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미중이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한 정황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 주석으로선 미중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미국이 원하는 대로 호락호락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경계감을 드러낸 셈이다.
미중은 갈등 해소 의지를 확인하면서도 이견을 드러냈다. 중국 외교정책 총괄 격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은 이날 블링컨 장관을 만나 △미국의 과장된 '중국 위협론' 제기 중단 △중국에 대한 불법적 독자 제재 철회 △중국 과학기술 발전 압박 포기 △내정 간섭 금지 등을 요구했다. 반도체 수출 통제 등 중국을 세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시도는 물론, 대만에 대한 무기 지원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불만을 정면으로 표출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에 즉답하는 대신, "미국은 지난해 발리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 확정한 의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이견을 책임 있게 관리·통제하며 이익을 공유하는 분야에서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긴장 관리' 필요성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전날 블링컨 장관과 친강 외교부장의 회담에서도 양측은 대만 문제를 두고 평행선을 달렸지만 '외교를 통한 긴장 관리'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중국 외교부는 "양측은 발리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 협의한 중요한 합의를 공동으로 이행하고 이견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대화와 교류 및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블링컨 장관은 친 부장의 미국 답방을 요청했으며 친 부장은 이를 수락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친 부장이 조만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갈등 속에서도 고위급 외교를 지속하자'는 공감대가 뚜렷해지며 올해 안에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17일 "앞으로 몇 달 안에 시 주석을 다시 만나 우리의 차이점과 (양국이)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오는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두 정상이 마주 앉을 가능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