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지만 없는 사람이었는데…."
85년간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없는 사람'으로 살아온 강모 할머니는 임시 신분증을 손에 쥐던 날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성과 본, 가족관계등록을 창설할 것을 허가한다.' 이 짧은 법원 결정문은 늦게나마 '무적자(無籍者)'로 살아온 강 할머니의 굴곡진 삶을 보듬었다. 많은 이들의 조력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기에 강 할머니에겐 의미가 남달랐다. 대체 할머니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1938년 이북 고성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일찍 부모를 잃고 외할머니, 외삼촌과 생활했다. 12세가 되던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이 할머니의 삶에 들이닥쳤고, 살기 위해 어른들을 따라 피란을 가야 했다. 월남해 강원도 고성에 정착했지만 의지할 곳은 없었다. 외할머니 별세 후 외삼촌은 강 할머니를 보모로 쓰며 폭력을 행사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주민등록도 없었다.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할머니는 부산까지 도망쳤다. 한 남성을 만나 딸을 얻었지만, 미혼모로 홀로 키워낸 딸도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각지를 떠돌다 50대 후반쯤 경북 안동에 자리 잡은 할머니는 홀로 아들 둘을 키우던 남편을 만나 함께 지내기로 했다.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기에 사실혼 관계로 지냈다. 함께 농사를 지으며 아들들을 키웠고, 신분 증명이 필요한 일은 그럭저럭 남편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8년 남편이 사망하자 할머니는 어려움에 처했다. 남편이 생전 지급받던 기초연금을 수령할 수 없게 됐고,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내다 파는 일도 나이가 들어 여의치 않았다. 설상가상 몸은 이곳저곳 고장나기 시작했지만 행정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기에 건강보험 등 기본적 복지 혜택은 언감생심이었다. 병원 처방을 받을 수 없으니 아파도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 등 비처방 약으로 버텨야 했다.
안동시 서후면 명리의 이웃들은 할머니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됐고, 지난해 10월 마을 이장은 할머니의 신분 등록을 위해 발 벗고 안동시청을 찾았다. 하지만 성본 창설과 가족관계등록 자체가 너무 어려웠고, 법적 절차도 밟아야 했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선주 사회복지과 통합사례관리사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청했고, 공단은 할머니가 구조대상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신분이 없는 할머니는 휴대폰도 없었다. 변호사와의 소통은 마을 이장과 사회복지사 등을 통해 이뤄졌다. 연고가 없어 신원을 보증해 줄 사람을 찾기도 힘들었고, 수사기관 지문 데이터베이스(DB)엔 할머니 흔적이 없었다. 결국 마을 이장이 인우보증인으로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대구가정법원 안동지원 이영철 판사는 최근 강 할머니의 성본과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허가했다.
강 할머니는 지난 8일 임시 신분증과 본인 명의 통장을 발급받자 "병원도, 은행도 갈 수 없었는데 이제 다른 사람들하고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됐다"며 "평생 소원이 이뤄질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사건을 담당한 법률구조공단 안동출장소 위광복 변호사는 "지자체와 공단의 유기적 협조로 복지 사각지대 국민에 대한 법률 구조가 이뤄질 수 있었다"며 "무적자로 어렵게 살아왔을 할머니의 남은 삶이 국가의 보호 아래 보다 편안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