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와 조지 월리스

입력
2023.06.19 17: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63년 6월 11일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조지 월리스 미국 앨라배마주지사는 앨라배마 대학교 강당 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흑인 입학생 2명의 수업 등록을 막기 위해서였다. 결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군에 동원령을 내렸고, 사령관이 문 앞에 나타나자 월리스가 물러섰다. 1995년 미 아카데미상을 휩쓴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할 만큼 미국사에 유명한 사건이다. 그로부터 60년 후인 지난 17일 대구시 동성로에 선 홍준표 대구시장을 볼 때 기시감이 들었던 이유다.

□홍 시장은 퀴어축제 도로행진을 막는 이유가 “대구시민 공공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월리스 주지사도 흑인 입학을 막는 이유를 “인종 간 폭력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둘 다 공공과 안전을 내세웠지만, 치밀한 표 계산이 숨어 있다. 월리스는 측근에게 주지사가 되기 위해 인종차별 정책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홍 시장 등 보수 단체장들이 공통적으로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반복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소수 권력층의 특권을 다수의 힘으로 제어하려는 ‘민주’와 다수의 횡포로부터 소수의 권리를 지키는 ‘자유’를 조화하려는 이념이다. 민주와 자유라는 종종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균형추는 정부다. 60년 전 케네디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월리스 지사를 압박한 것은 연방정부가 주정부와 대신 대립해 인종 갈등 확산을 막으려는 선택이었다. 대구 동성로에서 대구시의 저지를 뚫고, 퀴어 행사를 보호한 경찰도 같은 결정을 한 것이다.

□1979년 앨라배마 대학교 강당 문 앞에 다시 선 월리스는 “내가 틀렸고, 과거는 지나갔다”며 공개적으로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흑인 유권자들은 그 사과를 받아들여, 1982년 선거에서 그가 다시 주지사가 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월리스도 주정부에 흑인을 대거 등용했다. 소수자 차별이 당장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듯 보이지만, 자유민주주의의 도도한 흐름은 이런 선택을 한 정치인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홍 시장의 반성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정영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