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편집장, '아톰' 만화가 AI로 구현한 일본 만화…AI 도입에 눈치만 보는 한국 웹툰

입력
2023.06.20 04:30
12면
일본 대표 만화 출판사 슈에이샤, AI 챗봇 출시
고 데즈카 오사무의 신작은 AI가 제작
한국에선 별점테러 등 AI 보이콧 분위기
웹툰 플랫폼, AI 기술 도입에 주저하는 이유


"인공지능(AI)이니까 화내지 않고, 귀찮아하지 않아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한 만화가 지망생


만화 왕국 일본에서 AI로 제작 환경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만화가 지망생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고민을 해결해 주는 챗봇 형태의 AI 서비스부터 거장의 그림을 학습한 AI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시도까지 이어진다. 반면 웹툰 시장을 개척한 한국 업체들은 일부 일러스트 작가와 독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주춤하고 있다. 새 기술 도입이 늦어지면서 전 세계 웹툰 콘텐츠 시장에서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만화 출판사 슈에이샤최근 일본의 AI 스타트업 알 주식회사와 협업해 만화 제작을 도와주는 AI 챗봇 서비스 '코믹 코파일럿(Comic-Copilot)'을 내놓았다. 이 출판사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슬램덩크', '원피스' 등의 작품을 펴낸 일본의 대표 만화 출판사로 주간지 '소년 점프'를 연재하고 있다.



등장인물 이름 제안부터 작품 피드백까지 해주는 AI


코믹 코파일럿은 오픈AI의 챗GPT의 기술을 활용한 챗봇 형태 서비스로 만화 제작 관련 아이디어를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만화 지망생이 이 서비스에 작품 테마, 제목, 등장인물 이름, 필살기명 등 창작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물어보는 것부터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거나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 브레인스토밍 작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발에 슈에이샤의 편집진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스타 작품을 만들어낸 편집진의 노하우를 AI에 학습시킨 것이다. 이에 만화를 만드느라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지망생들은 소년 점프 편집자의 도움을 받은 AI에 갖가지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코믹 코파일럿은 공개 이후 열흘 만에 2만5,000명 이상이 이용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플롯 제작이나 아이디어 보조에 유용하다", "부족한 부분이나 개선점을 부드럽게 가르쳐 주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나아가 AI가 유명 만화가의 스타일대로 스토리를 짜고 그림까지 그린 작품도 나올 예정이다. '우주소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 고 데즈카 오사무의 히트작 중 하나인 '블랙잭' 신작은 올 하반기 AI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다. 블랙잭의 캐릭터와 기본 세계관을 공부한 챗GPT가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그림은 오사무의 그림체를 배운 이미지 생성 AI '스테이블 디퓨전'이 맡는다. 이 프로젝트는 데즈카의 장남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인 데즈카 마코토가 이끌었다.



'AI 보이콧'까지 벌어지자 기술 만들고 도입엔 주저


반면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웹툰 플랫폼들은 AI 기술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수년째 AI 기술 개발을 한 만큼 다양한 AI 서비스를 내놓을 역량이 갖춰졌음에도 AI를 도입했다가 발생할 논란을 우려해서다. 지난달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란 작품에는 그림 일부에 AI가 활용됐다며 별점테러를 당하는 등 국내에선 아직 AI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다. 네이버웹툰 게시판에는 AI 사용에 반대하는 독자들을 중심으로 'AI 보이콧' 운동도 벌어졌다. 이에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 모두 최근 진행한 공모전에서 AI 기술을 쓴 작품 출품을 금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AI가 웹툰 작가들의 노동 시간을 줄여 줄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AI 활용에 적극적인 작가들도 많지만 거센 반대 여론에 의해 제대로 된 AI 활용 방향 등이 논의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AI 기술 발전 속도를 볼 때 관련 협의와 규제가 완벽히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사이 누군가는 AI를 활용한 과감한 시도를 하며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