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레지스탕스의 '마지막 임무'

입력
2023.06.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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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장 물랭- 1

장 물랭(Jean Moulin 1899.6.20~1943.7.8)은 2차대전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상징적 존재다. 그는 1943년 5월 나치 치하의 수도 파리 한복판에서 지역별 이념별 8개 분파로 분열돼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무장 저항조직을 규합해 전국저항평의회로 단일화하고 초대 의장을 맡은 지도자다. 그는 불과 한 달 뒤 내부자의 밀고로 게슈타포에게 체포됐지만 조직 체계와 구성원 등을 함구하며 버티다 모진 고문으로 숨졌다.

그의 존재와 활약은 소수만 알던 극비 사항이었다. 전후 20여 년이 흐르는 사이 그는 프랑스인들의 심장을 데워온 레지스탕스라는 집합명사에 가려, 또 숱한 영웅들의 업적과 레지스탕스 이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해 온 이들에 가려 잊히다시피 했다.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샤를 드골 당시 대통령의 재선 선거 직전이던 1964년 12월이었다. 드골 정부는 그의 치적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영웅들의 안식처인 판테온(Pantheon)에 이장했다. 영웅 서사의 첫 줄은 레지스탕스 출신 작가로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가 썼다. 말로는 물랭의 누이가 쓴 전기 한 구절 즉 “(나치의) 야만적 고문에 얼굴이 부서지고 모든 장기가 파열되는 고통의 한계에도, 모든 것을 알면서도, 단 한 마디 비밀도 배반하지 않았던 사람”을 환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생애 마지막 날, 처참하게 망가져 있던 그의 얼굴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날 그 얼굴이 바로 조국 프랑스의 얼굴이었습니다.”

사실 영국 런던 망명지에서 물랭에게 저 임무를 맡긴 이가 드골이었다. 내도록 침묵하던 그가 저 시점에 물랭을 소환한 이유를 두고 말이 많았다. 당시 드골은 1962년 알제리 독립으로 촉발된 우파의 반발과 국민적 분열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그의 정적들은 드골이 죽은 물랭에게 또 하나의 임무를 맡긴 셈이라고 비판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