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방의 불을 껐습니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내던진 뒤 눈을 꼭 감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습니다. '출근하려면 자야 하는데'라는 걱정까지 더해지니 잠이 점점 더 달아나는 듯합니다. '눕기만 해도 스르르 잠이 들 순 없을까' 고민하던 중 며칠 전 봤던 매트리스 광고가 떠올랐습니다. 매트리스를 바꿔 보면 어떨까 하던 찰나, 지금 쓰고 있는 매트리스는 어떻게 되려나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잠자기는 틀린 것 같으니, 매트리스가 사라지는 과정을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20일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매트리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불면 등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숙면에 대한 갈망이 커져 매트리스 시장까지 쭉쭉 성장하고 있는 겁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서도 2019년 63만7,328명에 불과하던 국내 수면장애 환자 수는 4년 새 76만4,980명으로 10만 명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처럼 숙면을 위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현상인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뜨면서,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기능성, 고급 매트리스를 사거나 주기적으로 교체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면서 버려지는 매트리스의 양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2022년 제6차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1년간 버려진 매트리스는 106만659개로 무게만 2만6,776톤에 달합니다. 서울에서 20만5,374개, 숙박업소가 많은 제주에서는 2만1,967개가 버려졌습니다.
다만 이 통계 역시 추정치일 뿐, 실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폐매트리스 처리 체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폐매트리스는 사용자가 대형폐기물 신고를 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처리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제각각인데, 만약 지자체가 폐매트리스를 대행 업체에 넘기는 등 직접 관리하지 않으면 통계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쓰레기 증가는 환경오염으로 직결됩니다. 게다가 매트리스는 재활용도 쉽지 않습니다. 천·스펀지·스프링으로 구성된 매트리스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스프링을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손으로 천을 찢고, 커다란 고철 덩어리를 들어내는 일엔 사람 두 명이 달라붙어야 합니다. 또 최근에는 일반 매트리스(스프링 전체가 하나로 연결)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는 포켓형 매트리스(스프링이 독립적으로 움직임)가 많아지는 추세인 점도 걸림돌입니다.
2018년부터 매트리스 분리기계를 이용해 자체 처리 중인 세종시도 포켓 매트리스는 타 업체로 넘기고 있습니다. 폐기물처리시설 위탁운영사인 계룡건설 측은 "일반 매트리스는 5분이면 분리할 수 있는데, 포켓형은 (기계를 사용해도) 30분씩 걸리다 보니 쉽지 않다"면서 "폐매트리스가 1년에 1만4,000개 정도 들어오는데, 앞으로 포켓 매트리스의 비중이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처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불법을 저지르는 지자체도 있습니다. 통영시는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매트리스를 불법 소각해 온 사실이 들통나 시장이 고개를 숙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통영시는 공공근로자들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포켓형 매트리스 처리 과정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현장 환경미화원 쉼터 난방과 취사 용도였던 LP가스를 이용해 태워 왔다고 밝혔습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폐매트리스가 산처럼 쌓일 수도 있는 만큼, 재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 도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EPR은 제품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 부과금을 내도록 하는 제도로, 한국에서는 포장재 등 15개 품목에 적용 중입니다.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유럽연합(EU)은 회원국별로 매트리스 EPR을 도입했고, 최초 도입국인 프랑스는 정부·기업·시민 간 협력으로 매트리스 순환경제를 1조5,000억 원 규모로 키웠다"면서 "우리도 자발적 협약을 시작으로 제도를 안착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업계도 매트리스 자원순환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매트리스 렌털 사업을 운영 중인 코웨이는 고객이 사용한 뒤 반환한 매트리스를 코웨이 전용 재활용 업체에 입고해 절단, 파쇄한 뒤 고철과 유가물 등을 골라내며 관리하고 있습니다. 코웨이 관계자는 "자원순환경제 실현을 위해 개발·구매부터 회수·재활용까지 전 단계에서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친환경 경영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매트리스 생산 과정에서 버려지는 스펀지를 재활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매트리스 업체 슬로우베드는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재단할 때 나오는 자투리들을 모은 뒤 이를 녹여서 '레코텍폼'을 만들고 있습니다. 슬로우베드 관계자는 "연간 폐메모리폼 발생량 250톤 중 52톤을 재활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정도 절감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고객이 사용하고 버려진 매트리스까지 회수해 재활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