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화웨이라면 4G폰도 “하오하오”… 애국소비가 떠받치는 중국 IT

입력
2023.06.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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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굴기의 현주소: ④망상인가 미래인가] 
미국 제재 철퇴맞은 '중국의 삼성' 화웨이의 현재

편집자주

중국 반도체 기술이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중국 반도체 수준은 어디까지 올라왔고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까요?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한국일보가 상세히 짚어봤습니다.



중국인들에게 화웨이는 자존심이죠. 화웨이라면 성능이 좀 떨어져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달 19일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본사가 자리잡은 선전. 여기서 만난 중국인은 4세대(4G)만 지원되는 화웨이 스마트폰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한때 화웨이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올랐지만, 미국 규제에 직격탄을 맞아 현재는 구형 제품만 출시하는 신세다.

그러나 지금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을 대신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필사적인 생존의 노력을 펼치는 중이다. 마치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인 창업자 런정페이 회장의 별명인 '늑대'처럼 말이다.

새로운 먹거리 찾아 필사적 모색

선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곱히는 만상천지(万象天地) 구역. 이곳에 위치한 화웨이 플래그십 매장에 들어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여기가 진짜 화웨이 매장이 맞나'였다. 화웨이의 대표 제품인 스마트폰은 한쪽 구석에 진열된 반면, 가장 눈에 잘 띄는 매장 입구엔 화웨이 자동차 부품(전장)이 들어간 전기차가 전시돼 있었다. 혹시나 싶어 올라간 2층 공간도 대부분은 스마트홈(가정자동화) 관련 제품이 차지하고 있었다. 화웨이 직원에 따르면 이곳은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전시 공간이었다. 이런 전시(디스플레이) 방식만 봐도, 현재 화웨이가 시장에서 집중하려는 제품은 스마트폰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미국의 강력한 규제로 팔다리가 잘린 화웨이는 지금 커넥티드카(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자동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중이다. 고사양 반도체가 필요 없으면서도, 앞으로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중국 내 80개가 넘는 전기차 회사들을 대상으로 자율주행 솔루션과 전기차용 운영체제(OS)를 판매하려고 한다.

2018년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급성장하자, 미국은 화웨이를 콕 집어 첨단 반도체 기술과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규제를 시작했다. 화웨이 통신장비에 백도어(정상적 보안을 우회하여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숨어 있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미국의 기술 위상을 위협할 중국의 기업을 제대로 손봐주겠다는 게 진짜 목적이었다. 서방 각국은 런정페이 회장이 인민해방군 출신이라는 점 등을 들어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중국 기술 굴기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고 판단했다.

애국심 등에 업고 재도약 노려


화웨이가 스마트폰 대신 자동차에 집중한 것은 중국 정부와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화웨이의 방향이 곧 정부의 방향"이라며 "중국 정부의 지분이 들어간 대형 완성차 업체들이 당연히 화웨이가 출시한 자율주행 솔루션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가 재기할 수 있는 원동력은 정부의 지원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중국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화웨이 제품을 구매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화웨이(華爲)라는 이름 자체가 '중국(華)이 한다(爲)' 또는 '중국화하다'는 의미다. 전 소장은 화웨이란 기업이 중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설명하기 위해 런정페이 회장의 딸 멍완저우 부회장의 사례를 들었다. 멍 부회장이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가택 연금을 당했다가, 2021년 3년 만에 중국에 돌아왔을 때 CCTV 등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그 장면을 생중계했다. 중국에서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시청한 인원만 1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 소장은 "멍안저우의 복귀는 중국이 통상 전쟁에서 미국에 지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며 "중국 입장에서 화웨이는 망해서도 안 되고, 망할 수도 없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화웨이는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 대상이기도 하다. 화웨이가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 '메이트X3'는 미국 규제 탓에 4G 통신칩을 쓰면서도 가격은 삼성전자 최신 제품인 '갤럭시Z폴드4' 보다 20% 이상 비싸다. 하지만 화웨이 매장 직원은 "현재 주문해도 2, 3개월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DSCC)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는 24.9%의 점유율을 차지, 삼성전자(18.4%)를 제치고 2위 자리에 올랐다.

이처럼 ①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②중국인들의 애국 소비를 바탕으로, 화웨이는 당장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제품을 내놓으며 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이 자본은 바로 중국 정부가 꿈꾸는 첨단 반도체 자립을 위한 투자로 이어진다. 지난해 화웨이는 연구개발(R&D)에 전체 매출의 25%(약 30조 원)를 썼다. 이를 통해 화웨이는 중국 토종 소프트웨어 기업과 14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상 첨단 반도체를 설계할 때 필요한 설계·검증 도구(EDA)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영역은 원래 미국 시놉시스와 케이던스, 독일 지멘스가 과점했던 시장이다.

전병서 소장은 "화웨이는 자기들이 그동안 세계 최고의 EDA 기업에게 받은 노하우를 자국 기업에게 그대로 전수하면서, 10년 걸릴 시행착오를 줄여 3~5년만에 쫓아가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로 세계 1위에서 강제로 끌려 내려온 화웨이가, 정부와 애국심이라는 두 날개를 양쪽에 달고 다시 비상을 꿈꾸고 있다.

선전=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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