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차세대 소재에 올인... '실리콘' 다음 세상 노린다

입력
2023.06.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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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굴기의 현주소: ④망상인가 미래인가] 
반도체 R&D, 미국을 앞서기 시작한 중국

편집자주

중국 반도체 기술이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중국 반도체 수준은 어디까지 올라왔고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까요?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한국일보가 상세히 짚어봤습니다.

전기차 모터나 휴대폰 충전에 주로 쓰이는 전력반도체. 아직까진 대부분 실리콘(규소)으로 만들어지지만,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는 물질이 있으니 바로 산화갈륨이다. 실리콘 반도체와 비교해 저렴하면서도 더 높은 전압, 온도, 주파수에서 작동 가능하다.

바로 이 산화갈륨 전력반도체 분야의 기술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가 중국이다. 특허법인 AnA에 따르면 2021년 9월 기준 중국은 산화갈륨 전력반도체 관련 328건의 유효특허(지적재산 사용의 배타적 권리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보유, 세계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반도체 고품질 논문, 중국이 미국 추월

반도체 연구·개발(R&D)에서 중국이 가장 앞서가는 분야는 산화갈륨 전력반도체만은 아니다. 양적 측면(논문·특허 건수)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줄 알았던 중국의 반도체 기술 연구는 서서히 질적 수준에서도 미국에 근접하거나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기초과학 연구에서도 중국의 수준이 미국을 일부 넘어선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2000~2021년 국제학술지데이터베이스 과학인용색인(SCI)에 수록된 반도체 관련 연구분야 논문 192만 6,890건을 분석했다. 논문들을 작성 시기에 따라 2000년부터 5년 단위(1~4기)로 분류하고, 논문의 질적 수준 및 현황을 국가별로 분석한 것이다.


분석 결과 중국 연구자가 수행한 반도체 연구 논문 중 피인용 횟수가 상위 1%에 속한 논문은 2016~2021년(4기)에 4,493건으로 2,888건에 그친 미국을 제쳤다. 인용 횟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전세계 연구자들이 중국 논문을 많이 참고했다는 것이고, 중국 연구의 '품질'이 올라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도체 논문 피인용 상위 1% 수에서 중국이 미국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 범위를 넓혀 피인용 횟수 상위 10%에 속한 반도체 논문 수를 봐도 최근 5년 간 중국은 3만 9,341건이었고 미국은 1만 9,763건으로 파악됐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을 넘어 '전략물자' 취급을 받은 이후 각국의 R&D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중국 반도체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가장 두드러졌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KISTI 글로벌 R&D분석센터 안세정 박사는 "이 기간 동안 미국이 반도체 연구를 게을리 했던 것이 아니다"며 "중국이 다른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연구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킨 결과"라고 설명했다.

중국, 신소재 반도체에서 특히 강점

논문의 전체 수뿐만 아니라, 중국은 세부 연구 주제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KISTI가 2000~2021년 게재된 SCI급 반도체 논문 192만 건을 세부 주제 100개로 나누고 이를 백분위 분포에 기반한 연구 영향력 측정지표 '엑셀런스 지수(Excellence Score)'로 분석한 결과, 2016~2021년 중국 반도체 논문들은 100개 중 19개의 연구 주제에서 영향력 10% 내에 들었다.

KISTI에 따르면 이 19개 주제 가운데 중국의 반도체 연구 영향력 확장을 주도한 기술은 유기반도체 소재 및 응용분야다. 최근 5년 간 해당 주제로 연구된 세계 10개국의 '영향력 10% 내' 논문은 총 19만 3,614 건이었는데, 중국 논문의 비중은 66.5%(12만 8,940건)으로 미국(3만 1,386건) 등 나머지 9개국을 압도했다.


안세정 박사는 "엑셀런스 지수와 활동도 지수를 합쳐서 보면 중국이 다른 나라보다 반도체 소재 연구에 집중했다는 결과가 더 명확해진다"며 "이런 연구들은 실리콘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나라가 다 함께 노력했는데, 유독 중국 반도체 기술 발전이 도드라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이 예로부터 공을 들였던 기초과학 연구의 성과가 반도체라는 응용 분야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박진서 KISTI 글로벌 R&D센터장은 "2017~2019년 중국은 △화학 △전기전자공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재료공학 △나노기술 등 6대 기초과학에서 피인용 최상위 1% 논문 수가 미국의 2배를 넘어섰다" 고 말했다. 이 6대 연구분야는 정확히 반도체 기술의 근본이 되는 학문이다.


”과학기술 직접 챙긴다”…분주해진 시진핑

중국 공산당은 실험실에서 낸 성과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가기 위해 과학기술 전문 역량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노력의 정점에 칭화대 화공과를 졸업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등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제20차 당대회에서 당 최고권력기관인 중앙위원회 위원 204명 중 40%인 81명을 과학기술 전문 관료(테크노크라트)로 채웠다. 또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무원 기구 개편을 결정하며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했다. 이 기관의 총 책임자가 바로 시 주석이다.

신종호 한양대 중국지역통상학과 교수는 "공산당이 중앙과기위를 통해 과학기술의 거시정책을 직접 챙기게 됐다"며 "당 중앙위원 상당수도 테크노크라트로 선출돼 기술 자립을 위한 제도적-인적 기반 구축이 끝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 과학기술 강국으로 올라서겠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알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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