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비 모아 한국 왔어요" 세계 BTS 아미 집결한 여의도 가봤더니

입력
2023.06.1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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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페스타 열린 17일,  외국인만 12만 명 집결... 
생활비 부담 커졌지만 'n잡족'  돈 모아 한국 방문 
'역대급 30분 불꽃놀이'는 페스타 하이라이트  
RM "이 놈의 세상에서 같이 잘 살아보자"

"방탄소년단(BTS) 고향인 한국에 꼭 오고 싶었어요. 전통 한식도 먹어보고 싶었고요."

BTS 데뷔 10년 기념행사(BTS 페스타)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영국에서 온 니미샤 조지(27)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방탄소년단은 어디에나 있다'는 뜻의 영문 'BTS PRESENT EVERYWHERE'란 문구로 된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BTS 4년 차 팬인 그가 한국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지는 이 특별한 여행을 위해 최근 석 달 동안 '소'처럼 일했다. 어머니와 함께 석 달 전부터 한국 방문 계획을 세운 그는 5월 BTS 페스타 소식을 듣고 바로 직장에 2주 휴가를 냈다. 11일 입국한 조지는 "한국에 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며 "야근을 많이 하며 한국에 올 경비를 마련했다"며 웃었다. 그는 BTS 두 멤버인 지민과 정국이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도 다녀왔다.







BTS 드림 좇아 '전국 유랑'

이날 한강공원은 세계 아미(BTS 팬덤)들의 집결장이 됐다. 하이브와 서울시에 따르면 이곳에 모인 외국인은 12만 명이다. 공원엔 무지개의 마지막 색이 보라색(팬덤 상징색)인 것처럼 마지막까지 상대방을 믿고 서로 사랑하자는 의미를 담은 '보라해'가 한글로 적힌 보라색 티셔츠와 '서울'이란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쓴 외국인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교복을 입은 2013년 BTS의 풋풋한 데뷔 시절 사진이 전시된 풀밭에선 "소 큐트(So cute·정말 귀여워)"라고 외치는 외국인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생활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아무리 BTS를 좋아한다고 해도 먼 타국까지 찾기는 쉽지 않은 일. 한국 방문을 위해 일부 외국 아미들은 'n잡족'과 일시적 '캥거루족'으로 변신했다. 생업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허리띠를 졸라매 'BTS 드림'을 좇아 한국을 찾은 것.



프랑스에서 지난주에 입국한 마리암(21)은 "BTS가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음악으로 알려줬고 그렇게 내 삶에 기회를 줬다"며 "한국에 오고 싶어 1년 전부터 아르바이트해 돈을 모아 이번 BTS 페스타를 보러 처음 서울에 왔다"고 말했다. 직장에 10일 휴가를 내고 미국에서 9일 입국했다는 알렉산드라(23)는 "부모님과 같이 살며 돈을 모았다"며 "한국에 정말 오고 싶었고 온통 보라색으로 물든 도시와 도심 곳곳의 전광판에서 멤버들을 볼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BTS 페스타를 계기로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 아미들은 방탄소년단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유랑했다. 네덜란드에서 온 노아(22)는 "BTS 앨범 '유 워크 네버 얼론' 사진 촬영을 한 강원도 주문진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BTS 페스타로 세계 K팝 팬들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리면서 관광업계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BTS 페스타 기간인 12~25일 한국을 방문할 외국인 여행객 수는 지난달 대비 13% 증가(여행 플랫폼 트립닷컴 기준)할 것으로 추정됐다. K팝 체험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 비중은 지난해 12.9%(한국문화관광연구원 집계)로 BTS 데뷔 전인 2012년 7.0%에 비해 1.8배 늘었다.


양산 내려놓고 "BTS!"

이날 한강공원 일대는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한낮 30도의 푹푹 찌는 더위에도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아미 라운지까지 한강변을 따라 1.3km 구간에 펼쳐진 BTS 10년의 역사를 보러 40만여 명이 몰렸다. 원효대교 서편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주위엔 오후 3시쯤 이미 수천 명의 사람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스크린을 통해 '버터' '피 땀 눈물' 등 BTS 히트곡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자 잔디밭에선 '떼창'이 울려 퍼졌다. 일부 시민은 돗자리 주변에 양산을 내려놓고 일어나 춤을 따라 추기도 했다.

오후 5시. BTS 멤버 RM이 한강공원에서 진행하는 토크쇼 '오후 5시, 김남준입니다'가 시작하자 사람들은 대형 스크린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꿈을 접고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처지를 비관하고 있을 때 '화양연화' 시리즈를 듣고 사흘 밤낮을 펑펑 울었습니다. BTS 덕택에 미래를 보게 됐고 웹소설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팬의 사연을 읽은 RM은 "시간은 빠르고 모든 게 변하고 저도 많이 변했다"며 "이 놈의 세상에서 같이 잘살아보자. 저도 멋있는 (기획사 소속) 직장인으로 잘살아 보겠다"고 화답했다. RM은 이날 '인트로: 페르소나'와 '들꽃놀이'를 불렀다.




"까만 밤 아름답게 빛낸 불꽃처럼"

BTS 페스타의 하이라이트는 불꽃놀이였다. 오후 8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30분 동안 한강의 하늘에선 화려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BTS 러브'와 숫자 '10' 등이 '소우주' 등 BTS 곡에 맞춰 어두운 하늘을 밝게 수놓았다. 곳곳에선 "대박이다" "미쳤다" 등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국은 불꽃놀이 행사 내레이션을 통해 "까만 밤을 아름답게 빛내는 불꽃처럼 아무것도 없었던 저희를 빛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마워했다. 하이브에 따르면 5월 31일부터 6월 17일까지 BTS 페스타 관련 글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1,200만 건이 올라왔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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