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차정숙' '분노의 질주'도 버젓이...'누누티비 시즌2' 등장에 OTT들 한숨 짓는다

입력
2023.06.18 15:00
14면
4월 사이트 자진 폐쇄 이후 두 달 만의 복귀
전날 방영한 TV 드라마, 예능까지 올라와
사이트 차단 대비한 텔레그램 방까지 개설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로 수백억 수익 거둬


"에티오피아에 설립된 무료 OTT 서비스입니다. 자료요청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누누티비 시즌2 홈페이지


불법 무료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티비가 문을 닫은 지 두 달 만에 부활했다. 이 사이트에는 '낭만닥터 김사부3', '닥터 차정숙' 등 국내 드라마부터 '분노의 질주:라이드 오어 다이' 등 최신 해외 영화까지 무료로 올라와 있다. 이들이 사이트 차단을 피하기 위해 개설한 텔레그램 채널에만 6만 명 이상이 다녀갔고 구독자만 1만 명이 넘은 것으로 확인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누누티비'와 비슷한 형태의 불법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티비 시즌2'라는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다.



OTT 오리지널 독점 콘텐츠까지 불법 스트리밍


운영진은 "기존 누누티비와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공지했지만 사이트 겉모습을 보면 누누티비와 판박이다. 전날 방영된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시사·다큐부터 최신 영화나 애니메이션까지 유료 콘텐츠를 불법으로 스트리밍하고 있다. 심지어 OTT 업체들이 독점으로 다루는 '사냥개들(넷플릭스)', '행복배틀(티빙)', '청담국제고등학교(넷플릭스·웨이브)'도 올라왔다.

이들은 도메인이 차단되면 곧바로 주소를 바꾼다. 아예 홈페이지에서는 불법 이용자들에게 새 도메인을 소개하는 텔레그램 방도 알려주고 있다. 누누티비가 논란이 되고 정부에서 매일 사이트 주소를 차단하자 이를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국내 OTT업계는 한숨을 내쉬고 있다. 누누티비가 문을 닫자 국내 OTT 이용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애플리케이션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티빙, 쿠팡플레이, 웨이브, 왓챠 등 국내 OTT 4개사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1,410만 명으로, 누누티비가 문 닫기 전인 3월(1,308만 명) 대비 100만 명 이상 증가했다. 누누티비의 경우 월 이용자 수만 1,0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얻은 만큼 시즌2가 나타다면 또다시 이용자 유출이 예상된다.

이용자들이 'OTT 콘텐츠=공짜'라는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그러면 결국 국내 OTT 업체들이 투자할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티빙은 지난해 1,192억 원의 영업손실을 봤고 웨이브도 1,214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왓챠의 손실 규모는 지난해 555억 원으로 2년 전보다 세 배 이상 늘었다. 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에 따르면 2월 기준 누누티비가 올린 동영상 조회수는 15억3,800회였으며 이에 따른 피해 규모는 4조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 수시로 사이트 차단한다지만 원천 근절은 어려워


반면 누누티비는 엄청난 불법 광고 수익을 얻고 있다. 박완주 의원(무소속)실은 누누티비가 본격적으로 활약한 2021년 10월 이후 이들이 불법 도박 광고로 얻은 이익이 최소 333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누누티비 시즌2에서도 불법도박 광고를 올리고 광고 문의 텔레그램 채널도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사이트를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누누티비 대응 때는 하루 한 차례 접속 차단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매일 여러 차례 차단할 수 있게 대응 체계를 바꿨다.

하지만 사후적으로 해당 사이트 주소를 차단하는 것 말고 뾰족한 수가 없어 언제든 누누티비 시즌3, 시즌4가 등장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운영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작권 인식 개선이 근본 해결책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는 국내 OTT 업체와 방송사들이 형사 고소해 부산경찰청이 누누티비 운영자를 뒤쫓고 있다.

OTT 업계 관계자는 "누누티비가 문을 닫은 이후 또다시 시즌2가 등장했다는 소식에 허탈하다"며 "OTT에 돈을 내지 않고 누누티비 같은 곳에서 무료로 보려는 이용 행태가 확산할 경우 업체들은 콘텐츠 투자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