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별개로 도로점용 허가는 지자체서 받아라? 홍준표 주장 뜯어보니

입력
2023.06.1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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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상 도로 점용 허가 의무 아냐 
"협의 가능한데 행정대집행 무리수"
서울 퀴어 축제 도로 사용 무난할 듯

17일 대구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놓고 대구시와 지역 치안을 관장하는 대구 경찰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구시 공무원들이 30여 분 만에 철수해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됐으며 큰 불상사는 없었다. 그러나 홍준표 시장이 대구경찰청장의 문책을 강하게 주장하고, 대구경찰청 공무원직장협의회(대구 경찰직협)는 “경찰을 모욕하지 말라”며 반박하는 등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집회 전문가들과 법조인들은 대체로 홍 시장의 대응이 과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집시법, 지자체 신고·허가 의무 없어

18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대구시 공무원 500여 명은 전날 대구퀴어축제가 열린 중구 반월당역 인근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행사 주최 측의 물품 등을 실은 차량의 차로 진입을 막았다. 경찰에 집회 신고만 했을 뿐 지차제에서 도로점용 허가는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그러나 도로점용 허가 없이도 집회의 자유 범위 내에 있다며 차량 통로 확보를 위해 공무원들을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한 명이 다치기도 했다. 이날 질서 유지를 위해 투입된 경찰은 1,500명에 달했다.

대구시와 경찰의 충돌과 관련한 핵심 쟁점은 집회를 위해 도로에 무대 등을 설치할 때 지자체에서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다. 현행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에 따르면 행사 주최 측은 집회 시작 48시간 전에 일시와 장소 등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만 하면 된다. 대규모 집회의 경우 경찰이 사전에 교통 통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지자체와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협의일 뿐 경찰이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절차는 아니다.

5월 31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당시에도 건설노조와 금속노조가 각자 세종대로를 행진한 뒤 대한문 앞에 모여 집회를 진행했지만, 경찰은 노조의 도로점용에 대해 따로 서울시와 협의하지 않았다. 내달 1일 서울 을지로에서 개최될 예정인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도 도로 행진이 허용될 방침이다. 서울시도 “행진 시 도로 이용 여부나 몇 개 차선을 사용할지, 질서유지 방안 등은 경찰 담당”이라고 선을 그었다. 경비 업무에 오래 몸담은 한 경찰관은 “지자체가 집회 참가자들의 차로 진입을 막겠다며 경찰과 맞선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집회 시위에 도로법 적용 의문

대구시는 집시법이 아닌 도로법을 내세워 전날 행위가 정당하다고 항변한다. 도로법 제61조와 제74조는 ‘공작물 설치 등의 사유로 도로를 점용할 경우 구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고 도로를 점용한 경우 행정대집행에 따른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당시 진입을 시도하던 차량은 무대 설치 물품을 싣고 있었고, 추후 불법 무대가 설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도로법에 따라 차량을 막을 근거는 충분했다”고 했다.

그러나 집회 때마다 도로 사용을 따로 허가받도록 할 경우 누구나 신고만 하면 자유롭게 집회하도록 한 헌법 취지와 달리 사실상 집회 허가제로 변질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원도 적법 신고된 집회는 따로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더라도 도로에 집회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2016년 7월 일반교통방해죄 사건에서 “헌법이 집회 허가제를 금지하고 집시법이 집회 신고 시 따로 도로점용 허가를 받을 것을 규정하고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참가자들이 점용할 것으로 예정된 장소에서 집회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으로 인정될 경우 규제는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행정대집행은 현저한 위험이 있을 때 취하는 조치이지, 신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막을 근거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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