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불법 점거" vs "적법 집회" 대구 퀴어축제 갈등 속 개최

입력
2023.06.17 15:59
홍준표 "허가 없이 공공도로 점거 안 돼"
경찰 "판례상 적법 집회, 도로 사용 가능"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앞두고 행사 현장에서 대구시 당국과 경찰 간 이례적인 충돌이 빚어진 가운데, 홍준표 대구시장과 경찰 사이에 '도로 사용 적법성' 여부를 두고 설전이 이어졌다. 축제는 예정대로 낮 12시부터 진행 중이다.

17일 오전 축제가 열리는 대구시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진 것은, 도로 사용 권한이 축제 측에 있는지 여부를 두고 대구시와 대구경찰 간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앞서 홍준표 대구시장은 "도로 점용 허가도 받지 않고 어떻게 도로를 가로막고 축제 행사를 할 수 있나. 도로 불법 점거 시 무대를 강제 철거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행정대집행을 예고했었다. '도로는 점거하지 말고 인도나 광장만 이용해 집회를 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행정 당국은 이날 오전 7시부터 대중교통전용지구 내 왕복 2차로와 인도에 축제 집회 부스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대구시청과 중구청 공무원 500명을 배치했다. 9시 30분쯤 행사 차량이 행사 장소 부근에 도착하자 공무원 수백 명이 저지에 나섰다. 그러나 집회 장소 관리 및 충돌 예방을 위해 투입된 경찰이 다시 이를 막으면서 대치가 이어졌다. 경찰은 퀴어축제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신고·수리됐으므로 법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집회라는 입장이다.

경찰과 행정당국 간 대치는 행사 시작 직전인 낮 12시쯤 공무원들이 떠나면서 마무리됐다. 현재 퀴어문화축제는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충돌이 빚어진 후인 10시 26분쯤 현장을 찾아 "공무원 충돌까지 오게 한 대구경찰청장의 책임을 묻겠다. 경찰이 불법 도로 점거 시위를 보호하기 위해 공무원들을 밀치고 버스 통행권을 제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은 집회·시위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지, 점용 허가를 받지 않은 공공도로를 점거하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구경찰청 공무원직장협의회연합은 이에 반박 성명을 내어 "홍 시장은 집회 적법성과 별개로 도로 점거는 불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집회신고 뒤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에 대해 도로 점거를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법원 판례 등 일관된 태도"라며 "적법한 신고를 마친 집회를 열 때 도로점용허가를 받게 하는 것은 집회의 신고제를 허가제로 변질시켜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사 출신으로 누구보다 법을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시는지 의문이다. 대구퀴어축제는 2009년 처음 개최된 뒤 15년간 동안 대체로 안전하게 관리되었다. 홍 시장은 더 이상 대구경찰의 명예와 자긍심에 상처 주지 마라"라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오후 성명서를 내고 "헌법은 집회시위의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고, 오늘 행정대집행은 법적 절차도 위반한 명백히 위법한 행정이다. 대구시는 도로점용 허가를 핑계로 집회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규제하려는 시도를 즉시 중단하라"고 밝혔다. 이어 "대구퀴어문화축제 같은 집회는 소수자의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 될 수 있고,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교환을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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