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수린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다가 ‘클로버’에 대한 문장을 만났다. 이웃에게 선물로 받았다는 그 식물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작가는 이렇게 썼다.
“싱그러운 초록빛 잎들에 눈길이 멎으면 ‘이웃’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줄기 끝에 매달린 클로버 잎을 닮은 두 개의 동그라미가 돋아나 있는 단어, 이웃.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동그랗게 이어져 있는 사이.”
사이좋게 나란히 놓인 그 두 장의 잎에 한두 장이 더 붙어 세잎클로버가 되고 네잎클로버가 되는, 영어는 클로버, 우리말은 토끼풀. 내 기억이 맞다면 정확히 30년 전에 엄마가 나에게 알려준 첫 식물이 클로버다.
엄마는 꽃대가 가장 튼실해 보이는 토끼풀을 두 개 골라서 최대한 길게 끊는다. 그중 한 개를 먼저 잡고 꽃 바로 아래 꽃자루의 섬유질 결을 따라 세로로 살짝 찢어 홈을 만든다. 그 홈에 나머지 한 개의 꽃대를 끼워 팽팽하게 당긴다. 토끼풀 하얀 꽃 두 송이가 쫑긋 마주 보게 된다. 그러면 엄마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합쳐진 꽃송이 양쪽 꽃자루의 길이를 가늠해 본다. 작달막하면 손가락에 걸 반지를, 제법 여유가 되면 팔찌를 만들어 채워준다. 그걸 몇 번 반복해서 길게 이어 엮으면 목걸이도 되고 왕관도 된다. 그 식물 치장을 내 손가락과 팔목에 걸거나 머리에 가지런히 놓으며 엄마는 말했다. “내가 여섯 살 때쯤 외할머니한테 배운 거야.”
얼마 전에 나는 조카에게 이걸 자세히 알려줬다. “이건 너희 외할머니한테 배운 식물 놀이야.” 조카는 신기하고 재밌다며 폴짝폴짝 토끼처럼 깡충 댔다. “이모, 팔 좀.” 한참을 작품 활동에 빠져 있던 조카는 완성한 토끼풀 팔찌를 내 손목에 걸어준다. “예쁘지?” 툭 던져놓고 조카는 네잎클로버를 찾겠다며 눈을 돌린다.
그렇게 토끼풀 자리에 앉아서 조카랑 놀다 보면 시간 참 잘 간다. 어릴 적에는 더욱 그랬다. 누구보다 예쁜 반지를 만들겠다고 토끼풀 꽃 고르고 엮는 데 애를 썼다. 그 아이도 나를 좋아하게 해 달라고, 행운이 빨리 내게로 오라고 기도하며 네 잎 찾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금세 반나절이 지나곤 했다.
나는 종종 토끼풀을 한두 아름 안고서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옆집 봉산 댁 토끼장에 바짝 들러붙어 토끼풀 먹이는 일에 열중하고 있노라면 풀어놓고 키우는 오골계가 다가와서 토끼의 풀을 마구 뺏어 먹었다. 닭에게도 토끼풀을 먹이다가 앞집 먹미 댁 갓 태어난 송아지가 생각나서 남은 풀을 거머쥐고 소한테 달려갔다. 송아지 엄마야, 이거 먹고 아가 잘 키워. 토끼풀은 나하고 소하고의 대화를 이어주었다.
토끼며 가축들 먹이겠다고 1900년 무렵 국내에 일부러 들여온 외래식물이 토끼풀이다. 일찍이 네덜란드 상인이 일본에 드나들던 1846년 유럽에서 아시아 대륙으로 처음 유입되었고 지금은 거의 전 대륙에 토끼풀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다. 수십 년 전에 남한이 그랬듯이 지금도 집집마다 토끼 먹이는 일을 장려하는 북한에서는 토끼풀을 많이 심어 기르라고 한다. 북한의 식물분류학자 임록재가 쓴 '조선식물지'에는 ‘김일성 저작집’ 32권에서 옮겨 왔다며 이런 문장이 보인다.
“토끼풀은 토끼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집짐승이 잘 먹는 좋은 먹이풀이며 단백질 함유량도 많습니다. 토끼나 소에게 생채로 먹여도 좋고 말렸다가 겨울에 먹여도 좋습니다.”
실제로 토끼풀은 체내 자체에 영양분이 많고 콩과식물의 특성상 뿌리가 땅을 개간하는 능력도 높은 편이다. 방목이 활발한 뉴질랜드에서 얼마 전 발표한 논문은 자꾸만 절망을 이야기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토끼풀이 미래를 밝혀줄 식물이라고 말한다. 대량 사육으로 가축의 메탄 배출이 심각한 환경 문제로 떠오르는 시점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사료를 먹일 때보다 자연에서 저절로 자라는 토끼풀을 섞어 먹이면 동물들이 메탄을 덜 내보낸다는 것이다. 토끼풀 잎 조직에 든 성분이 사료의 단백질과 결합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뿐 아니라 땅을 기름지게 하고 소꼴과 마초와 꿀을 생산하는 토끼풀의 연간 가치를 가늠해 보니 뉴질랜드 화폐로 30억9,500만 달러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건 한화 2조 원이 넘는 규모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어쩐 일인지 토끼풀이 일명 골칫거리 ‘잡초’가 되어 잔디밭에서 뽑혀나가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그 식물이 도대체 누구에게 해롭다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게는 여전히 너무 쓸모 있는 식물이니까. 이웃과 나를 연결하고 외할머니와 엄마와 나와 조카를 이어주는 토끼풀이, 행복과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는 그 씨앗의 발아가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이롭기 그지없는 클로버가 어쩌다가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사는 신세가 되었을까.
허태임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